"알고 누리고 나누는, 주님의 소원"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유대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롬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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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21-35>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형제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여야 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마치 자기 종들과 셈을 가리려고 하는 어떤 왕과 같다.
왕이 셈을 가리기 시작하니, 만 달란트 빚진 종 하나가 왕 앞에 끌려왔다.
그런데 그는 빚을 갚을 돈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그 아내와 자녀들과 그 밖에 그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랬더니 종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참아 주십시오. 다 갚겠습니다' 하고 애원하였다.
주인은 그 종을 가엾게 여겨서, 그를 놓아주고, 빚을 없애 주었다.
그러나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나자, 붙들어서 멱살을 잡고 말하기를 '내게 빚진 것을 갚아라' 하였다.
그 동료는 엎드려 간청하였다.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 하지 않고, 가서 그 동료를 감옥에 집어넣고, 빚진 돈을 갚을 때까지 갇혀 있게 하였다.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딱하게 여겨서, 가서 주인에게 그 일을 다 일렀다.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다 놓고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애원하기에, 나는 너에게 그 빚을 다 없애 주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
주인이 노하여, 그를 형무소 관리에게 넘겨주고,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가두어 두게 하였다.
너희가 각각 진심으로 자기 형제자매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용서의 영성>

유대의 랍비 호세 벤 하니나는 “이웃에게 용서를 구하는 자는 세 번 이상 용서해 달라고 하지 말 것이다. 네 번째에는 용서해 주지 말 것이다” 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본문에서 베드로는 이 가르침의 두 배가 넘는 “일곱번을 용서해 주면 되겠습니까?”라고 질문하며 예수님의 동의를 구합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일곱 번 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하여야 한다” (22절) 였습니다. 490번 만 용서하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이 말씀은 끝없이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되던가요? 안돼도 말씀이니까 그냥 이를 악물고 따라야 하는 걸까요? 예수님은 그렇게 막무가내로 제자들을 다그치지 않습니다. 이 말씀에는 당시 초기 교회 안에서의 어떤 특별한 사정이 숨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저자는 용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전한 후에 하나의 비유를 듭니다. 한 임금이 종들과 결산을 하는데 일만 달란트 (100억불)를 빚진 채무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랬더니 왕은 이 채무자와 그 가족을 모두 팔아버리라고 명령을 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엎드려 절하면서 언젠가 갚을 테니 참아달라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왕은 이 종을 불쌍히 여겨 석방시켜 주면서 빚 자체를 탕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돌아 나오며 자기에게 100 데나리온 (2만불) 빚진 친구를 만나 빚을 갚으라고 다그칩니다. 절대 적은 돈이 아니지만 자기가 탕감받은 것에 비하면 오십 만분의 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는 참아달라고 간청하는 친구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왕은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00 데나리온 빚진 친구를 용서하지 못한 사람을 붙들어 책임을 물은 뒤 감옥에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비유의 결론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너희가 각각 진심으로 자기 형제자매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35절) 

베드로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 예수님의 비유, 그리고 비유의 결론의 단락들은 용서를 주제로 해서 다 연결됩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용서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다면 옳습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로부터 교회는 용서를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본성으로는 용서가 잘 안된다는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마음 깊은 곳에 상처로 남습니다. 그게 반복되면 병이 됩니다. 당시 마태의 공동체 속에서는 신앙 문제로 주변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박해를 당하면서 신앙을 포기하거나 악에 받친 신자들도 나왔습니다. 이런 반응은 인간의 본성이라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영혼 속에 내재된 상처를 씻고 힐링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용서가 가능합니다. 이런 과정은 매우 중요하지만 손해 본 사람을 보상해주고 심리적으로 위로해주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살아가면서 손해 보는 일을 만날 것이고, 또 그런 일로 분노할 것이고, 다시 보상과 심리적 치유를 필요로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근본적으로 발상 자체를 전환해야 합니다. 그것이 일만 달란트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무한한 빚을 탕감 받은 채무자와 같습니다. 이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백 데나리온으로 얽히고설키는 세상살이에서도 용서의 영성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와 죽음과 소멸의 두려움을 물리치는 부활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 속에서 하나님께 빚지고 사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께 받은 것을 일만 달란트로 느낄 수도 있고, 백 데나리온 정도로 느낄 수도 있고, 아무런 느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삶을 실존적으로 깊이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용서의 크기는 일만 달란트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경험하고 거기에 집중합시다. 백 데나리온에 얽힌 일은 그만 봅시다. 그런 건 때로 손해 봐도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용서로 인한 감사로 형제자매를 용서할 때 우리의 영혼이 예수님의 생명을 얻습니다. 하늘의 복이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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