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8:11~22)
석 달 뒤에 우리는 그 섬에서 겨울을 난 디오스구로라는 이름이 붙은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났다.
우리는 수라구사에 입항하여 사흘 동안 머물고,
그 곳을 떠나, 빙 돌아서 레기온에 다다랐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자 남풍이 불어왔으므로, 우리는 이틀만에 보디올에 이르렀다.
우리는 거기서 신도들을 만나서, 그들의 초청을 받고, 이레 동안 함께 지냈다. 그런 다음에, 드디어 우리는 로마로 갔다.
거기 신도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서, 아피온 광장과 트레스 마을까지 우리를 맞으러 나왔다. 바울은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용기를 얻었다.
우리가 로마에 들어갔을 때에, 바울은 그를 지키는 병사 한 사람과 함께 따로 지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사흘 뒤에 바울은 그 곳 유대인 지도자들을 불러모았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다. "동포 여러분, 나는 우리 겨레와 조상들이 전하여 준 풍속을 거스르는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죄수가 되어서, 예루살렘에서 로마 사람의 손에 넘겨졌습니다.
로마 사람은 나를 신문하여 보았으나, 사형에 처할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으므로, 나를 놓아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 사람이 반대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내가 황제에게 상소한 것입니다. 나는 절대로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나는 여러분을 뵙고 말씀드리려고, 여러분을 오시라고 청한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쇠사슬에 매여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입니다."
그들이 바울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아직 유대로부터 당신에 관한 편지를 받은 일도 없고, 동포들 가운데서 아무도, 여기에 와서 당신에 대하여 나쁘게 말하거나 소문을 낸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당신에게서 당신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 종파에 대하여 우리가 아는 것은, 어디서나 이 종파를 반대하는 소리가 높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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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고 싶은 본)
바울은 크게 삶의 일관성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는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헬라인에게는 헬라인과 같이 살아갔다고 고백하기도 했지요. 고린도 교회에는 내가 절대로 교회에 후원을 부탁하지 않는다고 했다가도, 빌립보 교회가 주는 헌금은 감사함으로 받기도 하구요...
하지만 그의 삶에 일관된 하나의 방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삶의 모든 것을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소원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관성이 있었기에 그는 자기에게 찾아오는 어떤 아픔도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자랑도 교만으로 이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오직 주님의 소원을 이루는데 사용되는 '수단'이 될 뿐이었지요. 그러니 목적에 소원을 두고 살아가는 그를 수단으로 사용되는 어떤 경험도 흔들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단단함이 저와 여러분에게도 채워지는 하루가 되기를...
https://youtu.be/mc5vbfYDFH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