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GBzbTcjxodo?si=inXpH5ErDXp--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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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9:41~44>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에 오셔서, 그 도성을 보시고 우시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터인데! 그러나 지금 너는 그 일을 보지 못하는구나.
그 날들이 너에게 닥치리니, 너의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에워싸고, 너를 사면에서 죄어들어서,
너와 네 안에 있는 네 자녀들을 짓밟고, 네 안에 돌 한 개도 다른 돌 위에 얹혀 있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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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눈물을 닦아주는 교회>
예수님의 삶은 즐겁고 유쾌하셨기에 그 분의 눈물은 도드라지게 나타납니다. 먼저 베다니의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남은 식구들과 함께 슬픔을 나누는 신앙의 휴머니즘을 보여주신 눈물이 있었습니다. 그 분의 마지막 눈물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였습니다. 죄악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의 운명으로 인한 눈물이고, 자신이 질 십자가로 절망이 구원으로 변할 것에 대한 감격이 있는 눈물이었습니다. 이 둘 사이에 오늘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이 과정에서 제자들은 흥분했습니다. 자기의 선생님이 이제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왕이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유대가 독립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흥분하는 모습을 보며 바리새인들은 분노하며 항의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슬픔의 감정을 가지고 눈물을 흘리십니다. ‘울었다’라고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klaio'라는 단어는 “억제할 수 없는 슬픔을 소리내서 표현하면서 크게 울다”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지금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엉엉 울며 통곡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이 울음은 멸망한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내 백성의 도성이 망하였다... 나의 눈이 눈물로 상하고, 창자가 들끓으며, 간이 땅에 쏟아진다 (예레미야애가 2:11)”라고 말했던 예레미야를 생각나게 합니다. 하사엘이 시리아의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면서도 그로 인해서 고통받을 이스라엘을 생각하며 그 앞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놓았던 엘리사를 생각나게 합니다.
결국에는 멸망할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예수님은 우십니다. 자신의 생명을 먼저 챙기기보다는 그 곳에 살고 있는 백성들을 먼저 생각하고 우셨습니다. 곧 자기를 죽이겠다고 달려들 그들을 위해서 안타깝게 여기며 우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의 손과 발에 못을 박고, 자기를 조롱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예수님은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라고 말씀하셨던 자신의 명령을 먼저 손수 몸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원수를 사랑한다... 우리에게는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가 아직 하나님과 원수일 때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화해시켜주셨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에게는 주님처럼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이번 한 주, 아직도 세상을 바라보시며 흘리시는 예수님의 눈물을 닦아드리는 교회가 되기 위해 이렇게 살아봅시다.
1. 원수된 우리를 먼저 사랑하고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예수님을 좇아, 우리도 너그럽게 이웃을 품으며 살아가십시다.
2. 주님을 아직 알지 못하는 우리의 VIP들을 향하여 예수님의 사랑으로 품어보고, 그 분들을 위해 섬기며 살아가 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