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1절)
세리와 죄인들, 상처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조차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오해하고 대인관계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왔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은 결코 그들을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시는 분이셨다. 그들을 이해하고 품어주시는 분이셨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2절)
우리는 때로 바리새인들의 태도에 분개하며
나는 결코 바리새인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정말로 그럴까?
나는 바리새인보다 더 의로운 사람일까?
예수님께서는 오늘 세 가지 비유의 말씀을 바리새인들에게 그리고, 바리새인들로부터 정죄와 비난과 모욕을 당하고 있는 세리와 죄인들에게 동시에 말씀하고 계신다.
나는 누구의 자리에 서서 이 말씀을 들을 것인가?
내가 누구의 자리에서 서서 이 말씀을 듣는가에 따라 이 말씀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내가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인의 자리에서 이 비유의 말씀을 듣는다면 이 비유의 말씀들은 “잃은 양 한 마리의 비유” “잃은 동전 하나의 비유” “탕자의 비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세리와 죄인의 자리에 서서 이 비유의 말씀을 듣는다면 이 비유의 말씀들은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을 때가지 찾으시는, 포기하지 않고 찾으시는, 목숨을 걸고 찾으시는 “선한 목자의 사랑” 이야기가 된다. 잃은 동전하나를 찾을 때까지 찾으시는 “집념의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배은망덕한 아들을 끝까지 믿어주시고, 끝까지 기다리시고 받아주시는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진리다. 우리 교회는 복음의 진리가 살아 있는 교회가 되게 하자.
첫째, 지금 내가 배은망덕하게 아버지를 떠나 인생의 바닥을
치고 있다면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를 선택하자.
하나님 앞에 염치와 자존심은 내려놓자.
둘째, 우리 교회는 어떤 사람이라도 용납 받고 쉼을 얻는
예수님의 품, 아버지의 품이 되게 하자.
* 내가 아직도 사랑하고 품어주기 힘든 사람은
어떤 부류의 사람인가? 누구인가?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하며 그분들을 마음껏 축복해 드리자.
내 힘으로는 안된다. 기도하면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