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자신이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꾸짖은 사건을 이야기한다. 사도권 자체를 의심받는 위치에서 예수님의 수제자를 꾸짖은 사건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충격적인 일이었다. 왜 그런 일이 있었는가? 교회를 대표하는 인물이 복음의 진리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복음의 진리에 합당한 삶이란 어떤 삶인가?
우선, 복음의 진리에 합당한 삶은 종교생활에 충실한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역사상 가장 종교생활에 충실했던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바리새인들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누구보다도 신랄하게 비판하셨다. 그들에게 화와 저주를 선포하셨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리새인들이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가르치기 위해서 주셨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가르쳐 주고 있는 복음의 진리에 합당한 삶은 어떤 삶인가?
첫째, 복음의 진리에 합당한 삶은 아버지의 사랑을 누릴 줄 아는 삶이다. 아들의 권세를 사용할 줄 아는 자유인의 삶이다. 오늘 본문에서 둘째 아들은 바로 세리와 죄인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첫째 아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지칭하고 있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와 늘 함께 있었지만 아버지에 대해 오해했고 아버지의 사랑을 누릴 줄 몰랐다. 아들로서 자유인의 삶을 살지 못했고 종의 삶을 살았다.
둘째, 복음의 진리에 합당한 삶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삶이다. 첫째 아들은 동생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동생을 동생으로 인정조차 하지 않았다. 그가 정말로 아버지의 기쁨이 되기를 원했다면 그는 열심히 일하는 대신,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동생을 찾아 나서야 했다. 형제가 서로 우애하며 서로의 부족을 감싸주며 사이좋게 지내는 것보다 부모를 더 기쁘게 해드리는 효도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드리는 진정한 하늘나라의 효자가 되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첫 걸음은 무엇인가?
순종의 삶
사람들의 어떤 종류의 잘못들이 내 눈에 자꾸 거슬리는가?
바로 그 영역에서 내가 나를 괴롭히고 있지는 않는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받아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은 나를 용서하셨는데 내가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주위 사람들(배우자, 자녀, 이웃, 교인, 불신자)의 잘못을 지적하고 들추어내기를 그만두자. 그런 유혹이 있을 때마다 나 자신을 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