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탄주일입니다. 성탄의 기쁨과 축복이 여러분의 가정에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의미와 목적이 무엇일까요? 왜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인간이 당하는 모든 시험을 통과하시고 가장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그 십자가를 지셨을까요?
우리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에베소서 2장 14절은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죄는 관계를 깨트리고 담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서 담이 생겼습니다. 나 자신과의 관계가 깨어져서 담이 생겼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깨어져서 담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그 관계의 담을 허물고, 하나님과 화평케하고, 나 자신과 화평케하고, 이방인과 유대인을 화평하는 바로 그 일을 가능케 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라고 고백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20절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다.” “너희는 성찬에 참여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 본문 18절을 보면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기 때문’이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셔서,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 주시고, 화목케 하는 직책을 맡겨주신(고후5:18) 우리 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감사하며 갖는 성만찬의 시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이 가득하여, 서로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투는 가운데, 주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회개 없이 성찬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업신여기는 더 악한 죄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27절 이후에서 성령님께서는 사도바울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에게 강력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주의 잔이나 떡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것은 바로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기 때문에 축복의 시간이 아니라 징계의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성찬은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성찬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화목케 하는 직책”의 사명을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성찬은 “주님께서 다시 오심”을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성탄주일에 함께 하는 성찬을 통해서 성탄의 의미가 깊어지고, 사명이 깊어지고, 주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의 소망이 더욱 더 깊어지시기를 소망해 봅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2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