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막 12:13~17
신앙생활은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은데 바리새인들은 내가 살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죽이기로 작정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기 위해서 사람을 보낸다.
그런데 그들은 화려한 칭찬으로 시작한다. 칭찬을 하지만 그 칭찬은 존경과 격려에서 나오지 않았다. 진심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 칭찬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코너에 몰아넣기 위한 내 뜻대로 움직이게 조종하려는 도구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들은 질문한다. 겸손하게 질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흑백논리의 질문을 통해서 예수님을 정치적인 곤경에 빠트리려는 비수다. 그래서 헤롯당 사람까지 함께 불렀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외식이다. 겉으로는 따뜻한 칭찬과 겸손한 질문이지만, 속으로는 꼼짝없이 올무에 걸려들게 하려는 비수를 담고 있다.
오늘은 두가지를 하나님 앞에서 점검해 보자.
나의 칭찬은 진심이 담겨 있는가? 다른 사람을 내 뜻대로 조종하려는 칭찬의 기술일 뿐인가?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둘기 같은 순결함과 뱀같은 지혜를 동시에 요청하신다. 다른 사람을 내 뜻대로 조종하려는 칭찬의 기술은 참 열매를 맺지 못한다. 칭찬의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나의 Being이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감사를 표현할 줄 아는 용기와 실력을 기르는 것이다.
나는 흑백논리에 젖어 있지는 않은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은 아닌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좋은 의도에서 시작되었지만 공동체를 산산히 갈라놓는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잘 따지는 근본주의일 수록 더 산산히 분열되고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시작되었는데 가장 처절하게 복음의 통로를 막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흑백논리에 빠진 사람이 가장 잘 하는 말이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그런데 사연을 들어보면 그럴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라고 대답하심으로 흑백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3의 다른 길도 있음을 보여 주셨다.
"그럴 수도 있지" "사연이 있을 거야"
이것이 흑백논리를 넘어선 우리 공동체의 표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