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누리고 나누는, 주님의 소원"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유대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롬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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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헌트> 포스터
ⓒ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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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덴마크 영화를 본다는 것은 생경한 일이다. 국가의 기준이 '아메리카'에 맞춰져 있어서 문화·예술은 물론 영화와 음식까지도 그들의 스타일을 따르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를 수입하고 배급하기로 작심한 엣나인시네마는 대단한 모험을 한 셈이다. 이런 시도가 중첩돼 다양한 영화감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영화 <더 헌트>에 대해 우리가 가진 정보는 그야말로 미미한 수준이다. 주인공 배역을 맡은 매즈 미켈슨이 <007 카지노 로얄>에서 인상적인 악역 연기를 펼쳤다는 것과 2012년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정도가 고작이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객석을 메우고 있는 관객의 절반 이상은 여성이었다. 

북유럽 영화는 사변적이고 철학적이며 존재론적인 문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 영화처럼 사소한 일상에 현미경을 들이대지도 않고, 에스파냐 영화처럼 강렬하게 인생을 조명하지도 않는다. 외려 인생에 내재한 모순과 광기 혹은 역사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어린 아이는 진실'만' 말한다?

▲  클라라는 루카스를 아빠의 친구나 선생님으로 대하지 않으려 한다. 사춘기 소녀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클라라! 영화 <더 헌트>는 여기에서 변곡점을 맞이한다.
ⓒ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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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마고우들이 넘쳐나는 고향 마을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는 루카스(매즈 미켈슨 분). 그는 유치원생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교사로서 하루하루 헌신적으로 살아간다. 그의 바람은 이혼한 아내가 데리고 있는 아들 마커스를 자주 만나보는 일. 마커스를 끔찍이 사랑하는 루카스는 언젠가 아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될 날을 꿈꾸며 오늘도 쓸쓸하게 귀가한다.

루카스와 가장 가까운 친구인 테오의 5살 딸 클라라는 나이에 비해 성숙한 어린 아이다. 유치원 원장의 말처럼 클라라의 상상력은 비상한 경지에 있으며, 또래 아이들과 많은 차이를 드러낸다. 클라라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루카스가 자리를 틀고 있다. 클라라는 루카스를 아빠의 친구나 선생님으로 대하지 않으려 한다. 사춘기 소녀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클라라!

영화는 여기에서 변곡점을 맞이한다. 루카스와 아내 그리고 마커스의 관계가 루카스와 클라라 그리고 테오 가족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관계의 외연 확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마을 전체로 뻗어 간다. 그리고 그것을 추동하는 본질은 '거짓말'이다. 루카스에 정성껏 마련한 선물을 거절당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클라라는 순간적으로 '아저씨가 성기를 보여줬노라' 거짓말을 했다. 이 거짓말이 마을 구성원 전체를 집단적 광기로 몰고 간 것이다. 

영화에서 빈터베르크 감독이 주목하는 핵심은 여기에 있다. '어린 아이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반성적인 사고에 조금도 익숙하지 않으며, 제2의 가능성은 아예 염두에도 두지 않는 사람들. 거짓말은 어른들의 전유물이며, 아이들은 진실만을 말한다는 신화 같은 믿음에 그들은 꽁꽁 동여매어져 있다.      

진실의 덫에 갇힌 사람들

▲  영화 <더 헌트>는 너무나도 취약한 인간과 인간세상의 면모를 낱낱이 까발린다.
ⓒ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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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믿음과 상(相)을 가지고 살아간다. 70억 인류가 지구에 서식하고 있다면, 70억 가지의 믿음과 70억 개의 상이 혼재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이 이토록 혼란스럽고 복잡다기하며 상호 충돌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그것 때문이다. 너무도 다른 인간과 인간의 공존이 어떻게 쉬울 수 있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더 헌트>는 너무나도 취약한 인간과 인간세상의 면모를 낱낱이 까발린다. 클라라의 말이 상상의 세계에서 나왔는지, 거짓과 허구의 세계에서 출발한 것인지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성실하고 사려 깊은 유치원 원장의 견해 표명에 기대 사건의 본질에 대한 사유를 미리 포기하고 일찌감치 집단 최면상태에 빠져든다.   

루카스를 가장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테오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이 관객을 충격과 공포로 인도한다. 우정과 가족애 사이에서 테오는 잠시 동요하지만, 클라라를 바라보는 부성애가 우정을 압도해버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같은 상황에 직면한다면 우리는 누구의 진실에 동조할 것인가. 딸인가, 친구인가.

우리가 자명하다고 믿고 있는 진실은 언제나 진실한 것일까. 아니면 그것이 그저 진실이기를 우리는 바라는 것일까. 습관처럼 환청처럼 혹은 피부마냥 익숙해진 관계처럼 그저 진실이려니 하고 치부해 버리는 것일까. <더 헌트>가 관객에게 유의미한 영화로 다가오는 대목이 거기 있을 성싶다. 지극히 당연하고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그 본질을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인간 이성의 허술함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과 문제 제기!

사냥꾼과 사냥감 사이에서

▲  루카스의 라이플총이 사슴 사냥 도구라면, 사람들의 불신과 조롱과 냉소와 폭력은 루카스의 마녀 사냥 도구인 셈이다.
ⓒ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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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초입, 루카스가 사슴사냥에 나선다. 무리지어 서 있는 사슴을 추적하고, 인내하며 최적의 시각을 기다리는 루카스. 마침내 총성이 울려 퍼진다. 의기양양한 루카스와 사슴고기 축제가 벌어지는 은성한 잔치판에 은밀하게 끼어드는 거짓말의 살수 같은 노림수. 루카스는 사슴을 사냥했지만, 그 자신이 사냥감으로 전락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더 헌트>가 섬뜩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런 연유 때문이다. 유치원 원장의 제보로 경찰 조사를 받은 루카스는 혐의가 없는 것이 밝혀져 석방되지만 사태는 호전되지 않는다. 한 가족처럼 지냈던 마을 사람들이, 가장 가까웠던 친구들과 그들의 가족이 루카스를 경원한다. 식료품점 점원들은 가공할 물리적 폭력까지 서슴지 않는다.

루카스가 은밀하게 잠입해 사슴을 노린 것처럼 사람들은 암묵적인 합의에 의지해 루카스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루카스의 라이플총이 사슴 사냥 도구라면, 사람들의 불신과 조롱과 냉소와 폭력은 루카스의 마녀 사냥 도구인 셈이다. 집단적 신념과 광기에 휩싸인 그들은 사냥감의 진실 혹은 내면세계 혹은 배려 따위에는 냉담하고 무관심하다.

약육강식과 전체주의적인 진실 그리고 야만적인 폭력성이 화면 전체를 지배한다. 완벽하게 고립되고 무력해진 루카스의 궐기는 당연해 보인다. 클라라를 따뜻하고 자상하게 대했던 루카스. 과연 그는 자신에게 닥친 마을 사람들 전체의 분노와 폭력으로부터 자신과 아들 마커스와 진실추구에 성공할 것인가, 그것이 <더 헌트>의 관건이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거짓의 행렬

▲  문제는 루카스 한 사람에게 집단적 광기가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루카스를 둘러싼 사람들까지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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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간은 어느 해 11월부터 그 이듬해 성탄절 무렵까지의 대략 13개월 정도다. 진실을 밝히고 거짓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는 루카스의 눈물겨운 사투가 성과를 거두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조금씩 마음을 열고 루카스와 마커스를 따뜻하게 맞이한다. 성년에 이른 마커스를 축하하는 자리가 만들어지고, 그들은 사슴사냥에 함께 나선다.

만약 이 지점에서 영화가 행복하게 관객과 작별했다면 우리도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북유럽 영화가 어디 그리 호락호락한가. 빈터베르크 감독은 진실의 부활과 우정의 복원, 관계의 건강한 재구축이 절대로 쉽지 않은 작업임을 드러낸다. 노루목에 서서 사슴을 기다리는 루카스. 어디선가 들려오는 한 발의 총성. 넋을 잃고 망연자실해하는 루카스. 

그렇게 <더 헌트>는 관객을 마지막까지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고 간다. 한 사람을 둘러싼 의혹의 완전한 해명과 그것의 전체적인 수용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집단적인 딱지나 왕따 내지 낙인이 대물림처럼 자리 잡은 국가 지상주의와 '반공 콤플렉스'의 천국 대한민국에서 이런 징후는 도처에서 확인 가능하다.  

문제는 루카스 한 사람에게 집단적 광기가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루카스를 둘러싼 사람들까지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루카스의 애인뿐만 아니라, 마커스마저 어느 때인가 그런 거짓과 폭력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것이 진실의 이름으로든, 애국주의 내지 민족주의의 탈을 쓰든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것이 영화의 주제다.

당신의 판단과 믿음, 언제나 맞았나

영화관을 나서는 관객들의 표정이 자못 무거워 보였다. 몇몇 관객은 영화가 끝났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런 장면이 빈터베르크 영화의 힘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오랜 숙고와 충격을 가슴 깊은 곳에서 추스르고 난 연후에야 그들은 자리를 벗어났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더 헌트>는 울림의 폭과 깊이가 남다른 영화다.

우리가 자주 대면하는 진실과 허위, 개인과 집단, 개인과 국가 사이의 충돌과 그 결과를 영화는 대리 체험하도록 인도한다. 그러면서 영화는 아프도록 묻고 또 묻는다. 

"만일 당신이 루카스 같은 상황과 직면하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은 집단의 이름으로 국가의 이해관계로 민족의 명운이라는 대의로 개인과 특정 집단에게 폭력과 광기와 마녀사냥을 행하지는 않았는가. 당신의 판단과 믿음은 언제나 올발랐으며,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가. 정말 그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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