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여학생 유정이는 볼멘소리로 말했다. "난 별로 되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요. 공부해본들 좋은 대학 가지 못할 게 빤하고, 또 대학 나온들 취직 못 할 게 빤하고, 취직하고 결혼한들 애 낳고 지지고 볶다 죽을 거 아녜요? 나는 어른이 되는 것도 싫고 공부도 싫고, 그냥 내 멋대로 살다가 일찍 죽고 싶어요." 유정이 부모님은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다. 가슴을 치고 발을 동동 굴러보지만 아이는 먼 산 쳐다보듯 할 뿐이다.
그런데 유학 갔다 돌아온 25세 경미씨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제가 노력해서 회사를 들어간들, 또 결혼을 하든 뭐 달라질 게 있나요? 지금처럼 무료하겠죠. 나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고, 별 욕심 없어요. 아무 생각 없이 살죠. 그냥 죽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에요."
그러던 경미씨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상위권을 달리던 성적이 점차 떨어지기 시작했다.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언제부터인지 학교도 재미없고 만사가 귀찮아졌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누구를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나날이 게을러지고 엄마가 시켜야 겨우 일어나고 엄마가 다그쳐야만 책상에 앉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보다 못한 엄마는 경미씨를 고등학교 때 일찍 외국으로 유학 보냈다. 그러나 거기서도 그녀의 무력증은 여전했다. 일탈 행동은 없었지만 학교에 안 가기 일쑤였고, 아침이면 엄마가 먼 한국에서 전화로 깨워야 겨우 일어나곤 했다. 그러한 생활은 힘겹게 들어간 미국의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의 안달로 겨우 대학은 마쳤지만 경미씨에게 미래는 김빠진 사이다 같다. 가슴 뛰는 일은커녕 세상일 모두 심드렁하다. 한 번도 딸이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보지 않던 엄마가 이제야 다그치듯 "너는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게 도대체 뭐냐?"고 묻는다고 한다.
'꿈'을 꾸지 않는 청춘들. 이들은 돈도 출세도 관심 없고 아무런 욕망도 집착도 없어 보인다. 겉으로는 쿨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이들은 '어른 아이' 피터팬일 뿐이다.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사회적 무능감과 무기력은 말하자면 '학습된 무력감'이다. 어릴 때부터 줄에 묶여서 자란 코끼리는 그 줄을 끊을 수 있을 만큼 힘이 세져도 줄을 끊지 못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결국 줄을 끊을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묶여 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누군가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살아오는 과정이 반복된다면 주체로서 자신을 탐색하고 스스로 능력과 잠재력을 검증해볼 기회를 갖지 못한다.
미래의 꿈을 위해 현재를 인내하는 아름다움을 가르치고 싶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주는 즐거움을 경험하도록 기다려 주어야 한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 원하고, 스스로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고유의 존재감과 성취의 기쁨을 깨닫기 때문이다. 자녀의 욕구보다 자기 욕구를 앞세우지 않는 엄마. 아이들 욕구의 리듬을 알아차리고 반의반 템포 따라가 주는 엄마. 이렇게 '현명한 엄마'는 절대 아이들보다 너무 앞서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