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0 마가복음 15:16-23
내가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과할 때 내 가장 가까이 에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는가? 예수님을 떠나는가?
빌라도의 뜰에서 예수님을 희롱하기 전에 그들은 온군대를다 모았다. 모욕을 당하는 것 그래도 한 두 사람 앞이면 참을만 하다. 그러나 그 현장을 보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 수록 더욱더 견디기 힘들어 진다.
빌라도의 뜰, 온 군대 앞에서 자색옷, 갈대 홀, 가시관 거기다 절하고 침뱉고 때리고.... 조롱하고 희롱하는 그 상황속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에 머물러 계신다. 예수님의 온유다.
이것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온유의 성품이다 .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 수치와 모욕을 참기 힘들어서, 기분 나빠서, 자존심 상해서, 뒤집어 엎었던가? 자식이 곁에 있건 말건, 예수님 안믿는 사람이 보든 말든, 초신자가 보든지 말든지.... 상스러운 말을 쏟아내고, 분노를 폭발시키고.... 그래서 영혼구원의 역사를 제자 양육의 역사를 수포로 만들어 놓았던가?
예수님은 반대다. 예수님께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그 시간에 예수님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루포는 오히려 영의 눈이 열려서 구주 예수님을 만나고 믿게 되었다.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되었지만 그의 집은 초대 교회에 유명한 믿음의 집안이 되었다 .
예수님께서 가장 힘들었던 그순간에 곁에 있었던 한 강도가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게 되었고, 로마 백부장 또한 그는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
고통과 고난의 순간에, 수치됨과 모욕의 순간에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온유의 열매다.
가정은 가장 훌륭한 온유함을 훈련하는 훈련장이다. 자식 때문에 수치와 모욕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 영적인 자녀를 위해서 수치와 모욕을 참을 수 있다. 가정은 온유함을 훈련하는 장소다.
예수님은 몰약을 거절하셨다. 몰약은 수치됨도 잊게 해 주고, 고통도 잊게 해 준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절하셨다.
수치와 모욕에 대한 두려움, 결코 작지않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큰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러나, 부활의 소망을 가진 우리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큰 두려움은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다 .
몰약을 거절하신 우리 주님께서는
수치와 모욕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라. 수치와 모욕으로 죽지는 않는다 말씀하신다 .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라.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한다. 죽음은 천국의 문이다 말씀하신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도 이기라 말씀하신다. 내가 몰약을 거절하고 고통까지도 다 받아내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고통의 시간 조차도 감당할만 하도록 줄여 주신다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