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누리고 나누는, 주님의 소원"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유대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롬 1: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성향이므로 여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자기만족을 추구하느냐에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기에 갈망이 있습니다. 선천적인 외로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걸 채우려고 여러 방향으로 애씁니다. 오늘의 사회는 예전보다 더 부유해지고 선택의 자유도 많아졌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이 점점 더 행복해지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점점 참된 사랑의 관계를 모르고 살아가며,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이어질 때 오는 행복을 알지 못하고 원하지도 않으며 살아가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 행복과 만족을 누리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왔습니다. 죄가 가져온 직접적인 결과는 소외였습니다. 하나님과 사람들로 부터의 소외가 만들어졌고, 우리는 모두가 이런 성향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롭지만 관계를 피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면서 결코 만족을 줄 수 없는 자기의 우물을 파면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은 그것을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의 터진 웅덩이를 팠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네 번째의 죄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배력 안에 들어올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누구에게도 조종당하거나 지배받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삶은 위로나 만족이 필요할 때 원하면 얻을 수 있는 방식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삶에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있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믿어드리는 것이 신앙입니다. 통제하고 조종하고 지배하려는 힘을 주님의 주권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광야나 캄캄한 어둠으로 보았습니다 (예레미야 2:31). 그래서 이런 삶이 때론 불편합니다. 거기에서는 자기의 성을 쌓을 수도 없고 자기의 횃불을 밝히고 싶지만 잘 안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컨트롤할 수 있는 웅덩이를 팠습니다. 비록 그것이 터진 웅덩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인데 불신앙은 자기의 의지 안에 모든 것을,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넣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만족추구를 자기 웅덩이를 파는 것으로 이루려는 사람은 그 죄악된 성향과 자기 이기심으로 주변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나”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타인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를 채워주는 관계로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손에 자신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결코 진정한 관계가 무엇인지를 경험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야 말로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고 사랑할 능력이 있으며, 하나님의 교회에 은혜와 선하심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생수의 근원이십니다. 우리는 그 분 외에 다른 웅덩이를 팔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만족보다 주님의 영광을 소망해 보기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43 [주일설교요약] 2023_05_07_풍성한 기쁨이 회복되는 목장과 교회 | 요한복음 2:1~10 이기준 2023.05.15 385
542 [주일설교요약] 2023_04_30_믿음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 마태복음 15:21~28 이기준 2023.05.08 484
541 [주일설교] 2023_04_23_생수의 강이 흐르는 삶 (조근호 목사님) 이기준 2023.05.01 395
540 [주일설교요약] 2023_04_16_바울의 평생의 소원 | 빌립보서 3:7~12 이기준 2023.04.25 561
539 [주일설교요약] 2023_04_09_신비하기에 소망을 품은 부활 | 고린도전서 15:51~54 이기준 2023.04.17 129
538 [주일설교요약] 2023_04_02_공동체를 통한 신앙과 성숙 | 창세기 1:26~28 이기준 2023.04.10 406
537 [주일설교요약] 2023_03_26_서로 돌보아 화평과 거룩에 이르는 공동체 | 히브리서 12:14~16 이기준 2023.04.03 222
536 [주일설교요약] 2023_03_19_서로를 격려하고 분발시키는 공동체 세우기 | 히브리서 10:24~25 이기준 2023.03.29 328
535 [주일설교요약] 2023_03_12_공동체를 깨뜨리는 죄성을 넘어 | 갈라디아서 5:22~23 이기준 2023.03.20 250
» [주일설교요약] 2023_03_05_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 예레미야 2:13 이기준 2023.03.13 355
533 [주일설교요약] 2023_02_26_회칠이 아니라 회개로 성숙한 관계 맺기 | 이사야 30:8~18 이기준 2023.03.07 505
532 [주일설교요약] 2023_02_19_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걷기 | 이사야 50:10~11 이기준 2023.02.28 362
531 [주일설교요약] 2023_02_12_내가 아니라 상대를 성공시켜주는 관계 | 창세기 4:10~17 이기준 2023.02.21 508
530 [주일설교요약] 2023_02_12_관계 안에서 맺어지는 성품의 열매 | 갈라디아서 5:22~23 이기준 2023.02.16 476
529 [주일설교요약] 2023_02_05_복음 위에 세워지는 가정: 자녀 | 시편 78:1~8 이기준 2023.02.16 144
528 [주일설교요약] 2023_01_29_복음 위에 세워지는 가정: 부모 | 에베소서 6:1~3 이기준 2023.02.16 369
527 [주일설교요약] 2023_01_22_복음 위에 세워지는 가정: 부부 | 에베소서 5:21~33 이기준 2023.01.24 399
526 [주일설교요약] 2023_01_15_주님과 함께 있음이 최고의 축복입니다 | 시편 73:23~28 이기준 2023.01.24 303
525 [주일설교요약] 2023_01_08_돌아보니 과분한 은혜였습니다 | 시편 23:1~6 이기준 2023.01.10 360
524 [주일설교요약] 2022_09_04 감사로 드리는 예배 이기준 2022.09.24 418
523 [주일 설교요약] 2022_08_28 흔들리지 않는 평안함 이기준 2022.09.24 287
522 [주일예배 말씀] 2022_05_08 | 질서를 회복하는 삶을 삽시다 | 출애굽기 8:16-19 Harry 2022.05.27 208
521 [주일예배 말씀] 2022_05_01 | 상황이 아니라 마음을 보는 눈 | 출애굽기 8:8-15 Harry 2022.05.27 369
520 [주일예배 말씀] 2022_04_24 |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나려면 | 창세기 22:13~14 Harry 2022.04.25 170
519 [주일예배 말씀] 2022_04_17 |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 골로새서 3:1 Harry 2022.04.25 150
518 [주일예배 말씀] 2022_04_10 | 열정보다 실망보다 사랑으로 | 마태복음 21:1-11 Harry 2022.04.25 25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24 Next
/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