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캄보디아를 다녀온 것이 계기가 되어서 캄보디아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공부하게 됩니다. 캄보디아에 머무는 기간 동안 하혜자 선교사님과 함께 앙코르 와트라는 캄보디아 최고 최대의 사원을 2시간 30분 정도 둘러보았고, 허통 선교사님과 함께 킬링필드 기념관이라고 할 수 있는 꾸오슬랭 고등학교를 2시간 정도 관람하였습니다.
앙코르 와트를 급하게 둘러보면서 든 생각은 ‘와~ 불국사는 완전 장난감이구나!’ ‘솔로몬 성전은 명함도 못 내밀겠구나!’하는 생각이었고, 꾸오 슬랭 기념관을 돌아보면서는 ‘도대체 인간이 어디까지 사악해 질 수 있는가?’ 치를 떨면서, 너무나 죄송스럽게도 제가 캄보디아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앙코르 와트라는 어마어마한 종교적 유산을 가진 나라 그리고, 1970년대 중반, 당시 인구 800만명 중에서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폭격과 고문과 기아와 강제노역으로 죽어간 땅에서 과연 하나님은 누구이며, 복음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제 마음을 떠나지 않습니다. 쉽게 대답할 수 없는 혼란스러움이 제 마음속에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지만, 한 가지 틀림없는 것은 결코 악은 악으로 이길 수 없으며, 오직 십자가만이 하나님의 지혜요 대답이라는 확신이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학살된 킬링필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저 역시 너무나 쉽게 폴 포트라는 크메르 루즈의 지도자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가톨릭이라는 종교를 가지고 들어갔음에도 식민 통치의 탐욕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키려 했던 프랑스. 자신들의 독립을 위해서 형제 나라라고 할 수 있는 캄보디아의 식민통치는 묵인한 베트남. 자기 나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캄보디아 땅에 무차별 폭격을 가하고 정권을 들었다 놓았다 했던 미국. 자신의 왕권을 지키고 또 되찾기 위해서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했던 시아누크 왕. 앙코르 와트의 영광스러움이 무능한 왕과 지식인들로 인해 짓밟히고 있다고 분노하며 악을 그보다 더한 악으로 해결하려 했던 폴 포트. 그리고 살기 위해서 또는 어쩌면 폼 나게 살기 위해서 그의 손과 발이 된 크메르 루즈의 조직원들과 청소년들..... 누구의 책임이며 누구의 죄일까요?
이 어마 어마한 대학살의 배경에는 인간의 “탐욕”과 “두려움”이 얽히고 섥혀 누구의 것인지 모르게 뒤엉켜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저 자신 또한 그 탐욕과 두려움의 한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규모와 강도와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지금 이 순간에도 킬링필드는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고 또 앞으로도 펼쳐질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당대에 이런 끔찍한 역사를 구체적으로 경험한 캄보디아 인들에게 하나님은 누구이며 복음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으로 나는 누구이며, 또 선교는 무엇일까요? 돈 보내는 것, 중요합니다. 기도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그러나 선교는 그보다 훨씬 더 크고 더 복잡하고 더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인 저 조차도 혼란스럽습니다. 목사인 제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죄송스럽습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정신 줄을 놓고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내가 세상 전부를 구원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내 앞에 보내주신 한 강도 만난 사람은 섬길 수 있습니다. 순간순간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순종을 해보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