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
2 |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
3 |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
4 |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
5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
6 |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7 |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
8 |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
9 |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
10 |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
11 |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
12 |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우리는 지금 이사야서를 함께 읽고 묵상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아주 특별한 성경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가장 많이 그리고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어서, 신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는 성경이 바로 이사야서입니다.
특히 이사야서 53장은 아무런 선입견 없이 한번 죽 읽어보기만 해도, ‘아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구나’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도 생생하게 예수님의 모습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활동했던 시기가 예수님 탄생 약 700년 전인 것을 생각해보면 가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사야서 53장이 예언해주고 있는 메시야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다윗과 같은 영광스러운 왕의 모습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사야서 53장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메시야의 모습은 보잘것 없고 초라하고, 인간이 받아야할 천벌을 대신 받았으나 오히려 오해받고 조롱당하는,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고난 받는 메시야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3년간의 공생애를 마무리 하시면서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던 날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그런데 이 종려주일은 참 이상한 날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계시는데, 예수님께서 3년을 훈련시킨 제자들은 바로 그 길에서 누가 더 큰가를 가지고 싸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야고보의 어머니는 자신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예수님의 나라에서 오른팔과 왼팔로 삼아 주실 것을 청탁합니다. 다른 제자들을 그 사실을 알고 분개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셨는데, 제자들과 군중들은 종려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환영하면서, “호산나, 다윗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외치며 열렬히 환영합니다. 제자들과 군중들은 기대와 기쁨에 들떠 있는데,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보시며 슬퍼하며 우십니다.
마음속에 질문이 생깁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예수님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하고 외로우셨을까? 이사야서 말씀이 이렇게 생생하게 “고난 받는 메시야”를 예언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도 스스로 자신의 고난을 반복해서 예고하셨는데, 어떻게 그들은 끝까지 그토록 철저하게 “왕으로 오시는 메시야”를 기대할 수 있는가?
첫째는 성경을 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성경을 읽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들의 책임이 큽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쉬운 번역으로 되어 있는 성경을 얼마든지 찾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책임 또한 회피할 수 없습니다.(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경청하지 않고,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인간의 죄성 때문입니다. ‘나에게 은혜가 되는가?’ ‘그렇지 않는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가?’입니다. 경청은 듣는 내가 중심이 되지 않고 말씀하시는 그 분이 중심이 될 때 되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