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6:1~21; “네 밀실에 들어가라.”
설교: 석정일 목사
오늘 본문의 말씀 26장에는 평강이라는 단어가 세 번 등장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는 분이시며(3절), 평강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12절). 이사야가 예언하고 선포하고 있는 메시야는 “평강의 왕”(이사야 9:6~7)이라 불려질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가 선포하는 시대에는 평강이 없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평강의 반대는 불안입니다. 그의 시대에는 평강은 없었고 불안만 넘쳤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급박한 상황 속에, 남유다는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앗수르, 바벨론, 이집트라는 강대국들 사이에 줄타기를 하며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쳤으나 무기력감만 더해질 뿐, 내일을 기대할 수 없는 안개 속과 같은 하루하루가 이어졌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지금의 시대 역시 과거 어느 때 보다도 더 불안이 증폭된 시대입니다. 도무지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출발점이 되어, 1990년대 초부터 한국사회에까지 유행하기 시작한 단어인 세계화는 무한경쟁의 시대를 예고했고, 무한경쟁은 무한한 불안을 가져왔습니다. 1등이 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1등을 지키는 것은 그 자리를 차지할 때보다 더 큰 스트레스와 불안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불안이 있습니다. 몸이 조금만 아파와도 혹시 암은 아닌가 하는 불안이 밀려옵니다. 인간에게 풍요를 약속했던 기술문명의 발달은 점점 일자리를 빼앗아 갔고, 젊은 세대는 그나마 경쟁의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하고 무기력감과 분노에 가득 차 있습니다. 분노에 가득 찬 사람과 함께 세상을 산다는 것은 불안한 일입니다. 인간에게는 그 보다 더 근본적인 죽음에 대한 불안, 죄에 대한 불안이 있습니다.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한 어마어마한 몸부림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산과 같습니다. 돈을 모아봅니다. 그러나 언제 그 돈이 날아가 버릴지 더 불안해 집니다. 불안은 쾌락을 추구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중독을 불러옵니다. 성에 중독되고, 술에 중독되고, 도박에 중독되고, 게임에 중독되고, 심지어 종교에 중독됩니다. 중독은 잠시 도피처가 되어주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더 큰 불안이 밀려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잉태하고 고통하였을 지라도 낳은 것은 바람과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생산치 못하였나이다.(26:18)” 해산하는 수고의 기도조차도 아무런 열매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심판의 날, 불안의 날, 고통에 날에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평강의 길은 무엇입니까?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네 밀실에 들어가 잠간 숨으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들어가 숨고 피하라”는 밀실은 어디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