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28~32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3)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한해 감사한 일들을 세어보는 2016년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감사한 일들을 세어보면서 우리의 가장 깊은 감사는 신기하게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고난의 시간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고통 속에 있는 분들의 곁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분들 가운데 하나님을 원망하고 쓴뿌리를 갖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고통 가운데 계신 당사자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더 찾고, 더 깊이 경험하고 감사하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고난과 감사의 신비입니다.
우리의 감사도 불평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의 대부분 비교에서 옵니다. 물론 비록 비교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불평하며 사는 것보다는 감사하며 사는 삶이 더 낫습니다. 그러나 비교에서 나온 감사는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감사로 보기에는 뭔가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 우리 자신에게도 우리가 비교하며 위안 삼는 그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요, 뿐만 아니라 내가 비교하며 위안을 삼은 그분들은 나의 태도와 모습에 깊은 상처를 받게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사는 비교에서 오는 감사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새옹지마의 지혜에는 한 차원 더 높은 감사의 비결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새옹지마의 태도는 나쁜 일에 절망하지 않을 수 있도록은 도와주지만 좋은 일에 깊이 감사하며 누릴 수 있는 능력도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우리의 감사는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이어야 합니다.
제가 어려운 상황 속에 계신 분들일수록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라고 언제나 말씀드릴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의 성품 때문이고,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며, 하나님의 목적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목적을 바라봄에서 나온 감사가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의 감사입니다.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실 정도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선택을 하면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으로 바꾸어 주마!’ 이 모든 일에는 나쁜 상황과 끔찍한 악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선”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고난의 시간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그 목적은 저와 여러분이 당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가지도록, 예수님과 같은 인격의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선포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면 닮아갈수록 관계가 회복되고 행복해 집니다. 그리고 천국을 가장 잘 누릴 수 있는 천국사람으로 성장해 가게 됩니다.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금년에 어떤 사건을 통해서 내가 예수님을 더 닮아가게 되었나? 한번 질문해 보고 그래서 그 사건을 더 감사하며 더 깊이 누리는 기회를 가져 보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닮은 모습이 어떤 모습일까요? 예수님 닮은 모습 아주 간단합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아시죠. 그 “사랑” 대신에 “예수님”을 넣어서 읽어보세요. 그것이 예수님의 성품이고 모습입니다. 그 자리에 “내 이름”을 넣어서 읽어 보세요. 내가 성장하고 자라가야할 방향입니다. 나를 예수님 더 닮게 해 준 모든 사건에 의지를 드려 감사의 고백을 드려보세요. 예수님 닮는다는 것은 그만큼 가치 있고 소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