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1 마가복음 15:24~32
예수님 좌우 편에 못박혔던 두 강도들 모두 처음에는 예수님을 조롱하며 욕하는 대열에 합류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것같다. 자신들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서 싸웠다. 로마사람 몇사람이라도 죽였다. 그러나 이 예수는 무엇인가? 그 능력과 그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군중들은 두 강도를 모욕하는 대신에 예수를 모욕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성전을 모독했다. 두 강도는 그래도 로마 사람 몇사람이라도 해치웠겠지만 성전을 모독한 이사람은 도대체 한 일이 무엇인가?
그런데 그런 와중에 예수님께 가장 가까이 있었던 두 강도중의 한 사람은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모욕스러운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 가장 가까운 곳에 머물면서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가장 고통스럽고, 수치스럽고, 모멸감이 느껴지고, 가장 억울하고, 분노가 치솟아오르는 순간에 나의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오해하고, 모욕하기까지 하는 사람들은
나 때문에 예수님을 버리게 되는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가?
억울하고, 답답하고, 고통스럽고, 모욕스러운 십자가는
스스로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지는 것이다.
사랑 때문에... 어쩔수 없이 버티는 것이다.
출산하는 엄마가 그 엄청난 출산의 고통 가운데서도
힘주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사랑 때문이다.
고통이 싫어 힘주기를 포기하면 아기는 사산될 수 밖에 없다.
사랑 때문에 진 십자가에서 중간에 뛰어 내려버리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생명은 결코 쉽지 않다.
영혼구원하고 제자 세우는 교회 되려면
십자가 위에서 사랑 때문에 버틸 수 있는
바로 그 온유의 근육이 자라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