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깊고 뜨거워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지금도 여진히 우리를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때 가능해집니다. 이것이 복음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고, 우리가 주님의 나라를 바라고 소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를 자신의 나라에서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저녁을 보내실 때,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나는 너희들 없이 살 수 없구나. 내가 있는 곳에 너희들도 함께 있어서 우리가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때까지 내 마음은 절대 진정되지 않는구나. 이것이 진실이다. 내 마음이 진정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하늘도 나를 진정시키지 못하고, 내가 아버지와 나누는 교제도 나를 진정시키지 못한다. 너희들이 나와 함께 있도록 하지 못하면, 내 마음은 온통 너희들에게 고정될 것이며, 내가 어떤 영광을 가졌다면 너희들도 그 영광에 참여할 것이다.” 이렇게 자기 사람들을 위하고 그들과 함께 있고 싶어 하시며 그들이 주님의 영광을 보기를 바라는 주님의 마음이 특히 대제사장의 기도로 알려진 요한복음 17장에 가득 들어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만날 때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배신을 단 한 번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마음을 괴로워하시며 책망하십니다. 제자들을 사랑하고 위하는 주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한 번에 그리고 완전히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위한 중보의 사역을 지속하고 계십니다. 그 분은 우리가 지닌 모든 종류의 고통과 핍박과 죄악들과 함께 고통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모든 고통을 안고 함께 고난 받으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죄인을 사랑하고 자기의 사람들을 품는 예수님의 마음은 또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기도 하고 성령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마음에 한 방울의 사랑을 더하지 않으시고 다만 그 사랑을 떨어뜨리실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죄인인 우리를 향하는 주님의 애정어린 마음을 아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두 가지를 도전해 봅니다.
1. 두려움이 아닌 자유로움으로 사랑하십시오. 사랑받는다는 확신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의 행동에 따라 더하거나 줄지 않습니다. 이처럼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은 사랑하는 대상인 주님께 기쁨을 드리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2. 죄를 짓지 않게 하는 자극으로 사용하십시오. 사랑하는 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은 사람이 없지 않겠습니까? 또한 넘어져도 일으키시는 우리 주님이 계신다는 사실이 여러분 모두에게 위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