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17~25)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입니다.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허무에 굴복했지만, 그것은 자의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굴복하게 하신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곧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뿐만 아니라, 첫 열매로서 성령을 받은 우리도 자녀로 삼아 주실 것을, 곧 우리 몸을 속량하여 주실 것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성장하는 통로들: 고난과 시간>
그리스도인은 말씀과 기도로 성숙해집니다. 거기에 개인을 넘어서 함께 서로를 세워가는 공동체의 요소도 매우 중요합니다. 루터는 여기에 고난이라는 요소를 더합니다. 사실 공동체의 삶을 살아가려 하면 고난이 될 만한 것이 눈에 보입니다. 하지만 그 너머에 있는 은혜를 바라며 공동체 속으로, 고난 속으로 들어가는 삶만이 참된 성숙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우리 삶에는 여러 이유로 고난이 찾아옵니다. 죄로 인해서 주어지는 고난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격의 고난이라면,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주님께서는 당신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우리의 몫을 이미 다 담당하셨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이 우리들에게 주어집니다. 어떨 때는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하나를 더 말해보자면 그리스도인이 믿음을 따라 경건하게 살고자 한다면 피할 수 없는 고난도 있습니다.
고난은 이처럼 여러 이유로 우리 삶에 찾아옵니다. 때로 우리는 이 고난이 어렵고 힘들어서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영광과 고난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영광과 고난을 동시에 받는데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관점은 우리에게 고난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해 줍니다. 현재 내가 당하고 있는 고난이 주님이 나를 통해서 만들어가실 영광의 풍성함과 비교할 수 없다! 이런 마음으로 고난을 감당할 때, 우리의 믿음은 고난 속에서 자라고 성숙해집니다.
고난을 감당하게 하는 힘이 장래의 영광에 있다는 사실은 자연히 우리를 성장의 또 다른 요소인 시간으로 데리고 갑니다. 로마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 한 사람의 성도도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인생이라는 시간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은 자라가게 되어 있고 성숙을 향해서 가게 됩니다.
요셉의 고난을 보며 시편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된 것은 요셉의 계획 속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가 감옥에서 겪었던 13년의 시간은 그의 인생에 무의미하게 낭비한 시간이라고 여겨졌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의도를 갖고 자신의 시간표에 따라 요셉을 인도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의식적으로 성장한다고 생각하는 시간만이 아니라, 낭비라고 생각되는 시간조차도, 하나님께서 빚어가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 24절에서 “우리는 이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믿음의 시간적인 요소를 드러내기 위해서 믿음을 소망이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믿음에서 시간의 요소를 제거하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믿음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고난의 현재에서 영원의 장래를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낙심과 절망에 가까운 시간을 보낼 때가 있습니까? 그 때에도 우리 주님이 우리 삶을 인도하고 계심을 믿고 그 때에도 성장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