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2 마가복음 15:33-41
잘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큰소리로 외치시고 숨지셨다. 아마 비명에 가까운 소리였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마셔야할 그 잔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신 순간이 아닐까?
그 잔은 어떤 잔일까? 육신의 고통의 잔? 그 잔도 마시기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죽음은 그렇게 끔찍하고 그렇게 아프다. 예수님께서 마셔야 했던 잔은 바로 죄의 잔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온 인류의 죄를 다 담은 죄의 똥물, 죄의 시궁창 물. 쳐다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는 물. 죽었으면 죽었지 마시고 싶지 않은 물. 아버지... 내가 저 죄의 시궁창 물을 꼭 마셔야 합니까?
그리고 그 인간의 죄의 시궁창물의 잔을 다 마시셨을 때 그 위에 부어진 하나님의 진노의 잔. 아들이라도 가차없이 내 버릴 수 밖에 없는 공의로운 아버지의 진노의 외면. 아버지의 가장 깊은 사랑을 체험하고 누려오셨기에 더 더욱 감당하기 어려웠던 하나님이 진노. 하나님의 버리심....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
내가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자랑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39절에서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라고 말씀하고 있다. 십자가위의 예수님을 보고 있다. 숨지시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보고...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셨도다 고백했다.
나를 지켜보고 있다.
세상은 교회를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십자가의 능력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연히 복음의 역사가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목자 목녀의 삶을 사는 분들이 있을 때는
목자 목녀의 삶이 십자가를 흉내내는 삶이기 때문에
복음에 부딪혀서 구원받는 사람들이 일어난다.
예수님께서 가장 억울하고 가장 답답하고 가장 고통스럽고 간장 불쾌하고 가장 더러운 십자가 위해서....억울함을 토로하고, 분노를 폭발하고, 저주하고, 비난하고 죽음을 맞이 했다면 과연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을 지켜보던 한 강도, 구레네 사람 시몬, 이 백부장은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받아 들일 수 있었을까?
우리의 삶에 수치스럽고 모욕스럽고 억울하고 답답한 순간은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나를 지켜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 생명을 살리는 통로다. 하나님께서 나를 높여 주실 때까지 결코 십자가에서 뛰어 내리지 말자.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생명은 결코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