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7:33~40
33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34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38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39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40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엘라 골짜기 다윗 앞에는 골리앗이라는 한 사람의 거인만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골리앗과 맞서기까지, 하나님께서 골리앗 앞에 다윗을 세우시기까지 다윗은 먼저 여러 거인들을 물리쳐야 만 했습니다. 골리앗에 대한 다윗의 승리는 결코 기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에 준비된 사람을 통해 일어난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일 뿐입니다.
지금 눈앞에 큰 형 엘리압이라는 거인이 서 있습니다. 그는 다윗 앞에 언제나 거인이었습니다. 지금도 단정 짓고 호통 치며 비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장 깊은 상처는 주로 가족에게서 옵니다. 그러나 가족은 미워할 대상이 아니라 끝까지 사랑할 대상입니다. 나를 훈련시키고 넓혀주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입니다.
엘리압이 맞서야 할 상대가 있었다면 그는 다윗이 아니라 골리앗입니다. 그러나 골리앗 앞에서는 찍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압의 분노는 다윗을 향한 분노라기보다는 한심한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차라리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사울왕은 다윗 앞에 서 있는 또 다른 거인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가장 기골이 장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골리앗과 싸울 수 있는 단 한사람을 찾으라 한다면 그는 단연코 사울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병뚜껑처럼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로 하여금 ‘사울왕도 어쩔 수 없다면 우리는 당연히 어쩔 수 없어....’라는 패배감에 무너지게 하는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사울이 병뚜껑 역할로 그치지 않고 다윗을 향해서 “넌 절대로 안돼” “넌 골리앗의 상대가 될 수 없어”라고 다윗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당당합니다. 골리앗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합니다. 첫째는 자신이 이미 다른 거인들과의 싸움을 통해 골리앗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다윗에게는 거룩한 분노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승리의 보장과 같습니다.
골리앗과의 싸움 전에 다윗은 먼저 자기 자신이라는 거인과 싸워 이겼습니다. 그는 몸을 쳐서 복종시켰고 그래서 물맷돌 던지기와 막대기 사용하기, 강인한 체력, 탁월한 악기연주 실력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곰과 사자라는 거인들과 싸워 이겼습니다. 곰과 사자는 다윗이 자신의 직장생활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만난 거인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직장과 일터와 일상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골리앗과 일전을 겨룰 수 있도록 우리를 훈련시키는 하나님의 훈련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