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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19장 1~3절
1 유다 왕 여호사밧이 평안히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그의 궁으로 들어가니라
2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3 그러나 왕에게 선한 일도 있으니 이는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이 땅에서 없애고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음이니이다 하였더라
여호사밧 왕은 대단한 믿음의 사람이었으며, 그 생애는 참으로 축복받은 생애 였습니다.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습니다. 아합 왕이 전사하게 되는 기르앗 라못 전투에서도 생명을 건졌습니다. 싸워봐야 뻔한 결과일 것 같은 연합군과의 전쟁에서도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찬양대를 앞세워 전쟁에 임하고, 어마어마한 기적의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후 그의 나라에 태평과 평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축복의 사람 여호사밧 왕이 죽고 난 뒤에 그 집안에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집안이 풍지박산이 납니다. 장자 여호람이 자기의 동생들을 다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여호람 자신도 아끼는 사람 없이 비참하게 죽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물론 1차적으로는 자신의 며느리였고, 여호람의 아내였던 아합의 딸 아달랴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합과의 교제를 끝까지 끊지 않았던 여호사밧의 고집스러운 불순종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는 바로 그 문제는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영역과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이는 여호사밧의 지독한 위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어떤 사람과 가까이하고 있는가가 내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칩니다. 그렇다면 죄인들과 도무지 사귀지 말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가까이 함의 동기가 중요합니다. 심은대로 거둡니다.
하나님께서는 위선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내면의 동기가 중요합니다. 내가 건강한 동기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내가 그의 “눈치”를 보고 있다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출발했다는 뜻입니다. 내가 “배려”하고 있다면 건강한 동기입니다. “눈치”가 아니고 “배려”가 될 때, 나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고, 고집부리지 않고 관계를 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