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3:19~26, 32~33>
내가 겪은 그 고통, 쓴 쑥과 쓸개즙 같은 그 고난을 잊지 못한다.
잠시도 잊을 수 없으므로, 울적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은,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님의 신실이 큽니다."
나는 늘 말하였다. "주님은 내가 가진 모든 것, 주님은 나의 희망!"
주님께서는,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주님을 찾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참고 기다리는 것이 좋다.
주님께서 우리를 근심하게 하셔도,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우리를 괴롭히거나 근심하게 하는 것은, 그분의 본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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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번의 아침마다 새로운 축복을>
예레미야애가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통하여 깊은 절망을 경험한 예레미야 선지자가 기록한 슬픈 노래입니다. 그렇기에 여기에는 영적 고뇌와 탄식이 주로 나타나지만 하나님의 속성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희미한 희망도 함께 드러납니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함께 파괴된 성전은 하나님의 패배와 죽음을 의미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그들에게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때로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믿음을 뿌리 채 흔드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 해를 지나는 동안에, 여러분의 신앙이 뿌리 채 흔들리는 것 같은 경험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이런 때는 우리 안에 비통함, 하나님에 대한 쓴 뿌리가 깊이 자리를 잡기 좋은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오늘 예레미야 선지자가 보여주는 반응은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쓴 쑥과 쓸개즙 같은 쓴 고난을 당하는 중에 그는 “마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진다”라고 말합니다. 무엇이 그를 절망 안에서 소망을 고백하게 만든 겁니까? 선지자는 지금 자기가 겪는 고통스러운 상황이라는 고정된 렌즈로 하나님을 보지 않습니다. 그는 도리어 이 모든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주목합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님의 신실이 큽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쑥과 쓸개즙이 올라오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합니다. 그렇게 슬퍼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실은 지금 일어난 일보다 더 처참하고 비참한 일이 일어났어야 마땅하지만, 자신들이 아직 진멸되지 않았음을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과 긍휼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성품을 곰곰이 마음 속으로 묵상하면서 그는 오히려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지자는 자기의 상황에 따른 상황의 렌즈로 하나님을 보지 않습니다. 그는 변하지 않으시는 속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렌즈로 자기의 변화무쌍한 상황을 봅니다. 그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그리고 주님의 신실하심을 통해서 자기의 상황을 해석합니다. 그러니 그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은 선하시다!”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선지자의 노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노래는 어디에 있습니까? 바울은 우리에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라고 고백합니다. 이 하나님의 성품이 변하지 않기에 우리 삶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늘 소망이 있습니다.
내일부터 우리는 2024년을 맞이합니다. 366번의 날, 366번의 아침을 맞이하겠지요. 어쩌면 그 중 많은 아침을 우리는 두려움과 염려를 불러 일으킬만한 상황에서 맞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아침마다 새로운 사랑과 긍휼을 경험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가 아침마다 “그래도 하나님은 선하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