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지향적인 급한 성격은 심장 관상동맥 질환 많아
억울한 일 잘 참는 성향이면 암 발생 확률 높아질 위험
제 성질이 자기 질병 유발… 병 키우며 사는지 돌아봐야
한국 드라마에서 공분과 연민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단골 장면이 있다. 모진 시어머니의 고된 시집 생활을 견디는 착한 며느리, 남편의 바람까지 참아내는 순한 아내라는 설정이다. 그러다 어느 날 그런 주인공이 암(癌)에 걸려 세상을 마치는 대목까지 나오면, 시청자들의 분개와 안타까움은 극에 달한다. 뻔한 스토리이지만 매번 짠하다. 그런데 이런 도식은 나름대로 의학적인 근거를 갖고 있다. 당하고도 참는 성격은 암 발생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동안 성격과 질병의 상관관계에 대한 의학 연구는 활발히 이뤄져 왔다. 미국의 저명한 심장 전문의 하워드 프리드먼은 어느 날 자신의 환자 대기실 소파 천이 다른 과의 대기실보다 유독 빨리 닳고 해진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환자들의 행태를 유심히 살펴보니, 심장병 환자들은 느긋하게 소파에 깊숙이 기대어 앉지 않았다. 다들 소파 끝에 걸터앉아 안절부절못하는 모양새였다. 양손은 팔걸이를 움켜쥐고 당장에라도 튀어나갈 듯한 태세였다. 좌불안석(坐不安席)의 모습이었다.
그는 심근경색을 일으키는 관상동맥 질환자들의 성격을 분석해보니, 많은 사람이 타입 A였다는 결과를 내놨다. 사람의 성격은 크게 A·B·C의 3가지 타입으로 나눈다. A형은 소유욕이 강하고, 성공 지향적이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초조해한다. 매사에 의심과 불만이 많다. 적개심을 잘 표출하고 참을성이 적다. 이들은 모든 일을 경쟁적으로 보고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으면 불안하다. 항상 데드라인(dead line)에 자신을 몰아넣는다. 하지만 이런 성격의 사람들은 에너지가 왕성해서 많은 성취를 이룬다. 목표가 뚜렷하고 승리욕이 강한 탓이다.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 중에는 타입 A가 많다.
이들에게 심장병이 많은 이유는 성격 자체가 혈압을 상승시키기 때문이다. 분노와 적개심을 느낄 때, 스트레스 호르몬인 아드레날린이 쏟아져나와 혈압을 올리고 혈관 안쪽 벽을 상처 낸다. 그것이 일상처럼 반복되고 거기에 비만·동맥경화·흡연 등 심혈관 질환 위험요소까지 겹치면 증폭 효과로 심장병이 일어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는 분석이다. 이는 여러 나라 연구에서 일관되게 나온다. '호통 회장님'이 "아이고! 혈압이야" 하며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장면은 나름 일리 있는 설정이다. 이들에게는 하루 세 번 식후(食後) 30분, 법정 스님의 '무소유' 읽기가 심장약이다.
그와 정반대 성격이 타입 C다. 항상 잘 참는 순응형이다. 남에게 착하다는 말을 들으려 하고, 남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를 자주 의식한다. 우울감이 바탕에 깔렸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담아둔다. 사회적으로는 공손하고 정중하다. 우리나라에 많은 유형이다. 점쟁이가 손님에게 다짜고짜 "당신, 내성적인 성격이구먼!"이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어떻게 알았느냐"고 좋아한단다.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타입 B는 천하태평 유형이다. 항상 느긋하고 급한 게 없다. 남의 일보다는 자기 것에 몰두한다. 성취보다는 취미에 관심이 많다. 경쟁에서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시간 개념도 적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성격이다. 이런 사람들이 정치하면 나라가 망한다. 하지만 이들은 창의적이고, 사색을 즐긴다. 대개 시인·음악가·화가 등 예술에 종사한다. 급한 게 없는 이들이 심장병에 걸릴 위험은 타입 A보다 4~5배 낮다. 그러나 자신의 기분에 너무 관대한 탓일까. 타입 B에게는 조증(躁症)과 우울증이 교대로 나타나는 조울증이 많다.
우리는 왜 아플까? 아플 짓을 했으니까 아픈 것은 아닐까. 많은 질병이 삶의 파생물이다. 정신은 몸을 바꾸고, 몸의 병은 마음을 바꾼다. 요즘 힐링 서적들이 베스트셀러를 독차지한다. 그만큼 우리가 치열하게 갈등하고 서로 부딪치는 '질병 생산 시대'를 살고 있다는 방증일 게다. 자신이 질병 발생의 핑계거리를 만들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봤으면 한다. 나는 100% 타입 B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