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 4:9-11
9.하나님이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박 넝쿨이 죽었다고 네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요나가 대답하였다. "옳다뿐이겠습니까? 저는 화가 나서 죽겠습니다."
10.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수고하지도 않았고, 네가 키운 것도 아니며, 그저 하룻밤 사이에 자라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식물을 네가 그처럼 아까워하는데,
11.하물며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수없이 많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
<내가 어찌 아끼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계속해서 준비하고 계심에도 요나는 자기의 마음에 맞는 것, 자기를 기쁘게 만들어주는 것이 없어졌을 때 화를 냅니다. 그 때 하나님은 “박넝쿨이 죽었다고 네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라고 질문하십니다. 이 질문은 “네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입니다. 내 삶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무엇인가가 더 중요한가, 아니면 그것들이 좀 없다고 하더라도 주님이 같이 계셔 주시는게 더 중요한가 선택하라는 말입니다. 이 질문에 요나는 “옳다 뿐이겠습니까? 저는 화가 나서 죽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는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건 말건, 내 삶 속에서 훈련을 통해 나를 정금같이 만들어 가시건 말건, 나는 내 삶을 즐겁게 만드는 무엇인가를 가지는 것에 온 힘을 다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반응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나”라는 선언입니다.
그 때 주님은 요나를 설득하십니다. 그리고 이 설득은 “하나님의 생각은 늘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다”라는 한 방향을 향해 있습니다. 하나님은 뱃사람들이나 니느웨 백성들을 향해서 늘 변치 않는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런 하나님은 자기의 사람이 주님과 똑같은 마음을 품기를 소망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요나를 향해서 이렇게나 설득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요나, 그 분의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은 요나가 이처럼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깨닫고, 하나님과 같은 곳에 눈을 두고, 같은 것을 마음에 품고, 같은 사랑을 전하며 살기를 원한다고 우리 주님은 설득하고 계십니다.
동일한 하나님은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주님의 마음과 사랑을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님을 깨닫고, 그로 인해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것을 향해 있습니다. 이를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우리 교회에서 목장과 교회의 존재이유는 두 가지임을 잊지 맙시다. “가족됨을 통해서 영혼구원과 제자양육이 이루어지는 것.” 가족됨이 너무 앞서서 목장이 친교모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목장과 교회는 친교하며 즐기는 유람선이 아니라 함께 힘을 모으고 영적전쟁의 장으로 달려가는 전투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들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먼저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삶에 부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자격이 없음에도 먼저 내려주신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는 삶에서 먼저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내 의견과 생각, 소유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부어지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우리 삶에 채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비우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번 주 목요일부터 시작되는 다니엘 금식은 나를 비우는 시간입니다. 내게 가장 중요한 ‘먹는 것’을 좀 내려놓음으로 나를 비우는 것입니다. 내가 먹는 것을 결정하고 선택하는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특히 다니엘 금식을 통해서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키고 힘이 있다고 휘두르던 폭력을 그치는’ 일은 우리의 영 뿐 아니라 관계를 이롭게 만드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TV, 인터넷, 눈, 게임 등 중독에서 벗어나는 시도를 통해서 연습해볼 것입니다.
그런데 비우는 것이 중요하지만 실은 비운 다음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 삶에서 시간이 부족한 이유는 먼저 채워야 할 것을 먼저 채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기도라는 가장 중요한 두 축을 먼저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금식기간 동안 신약성경을 한 번은 다 읽어봅시다. 새벽을 깨우고 저녁을 드리며 새벽예배와 심야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보십시다. 말라붙은 우리 영혼의 밭은 다시 갈아엎어 보십시다. 하나님도 내 식으로 믿는 삶에서 벗어나서 주님의 방식에 내 삶의 습관을 맞춰 보십시다.
요나서는 요나의 침묵으로 끝이 납니다. 요나의 침묵은 자기를 끝까지 관철시키는 그의 자존심을 드러냅니다. 침묵을 통해서 요나는 하나님의 회개와 부흥의 자리에 초청하시는 음성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위대한 일이 이루어 지는데 팔짱끼고 그것을 바라보기만 하는 요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극심한 아픔 속에서도 자신을 ‘정금같이’나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을 듣고 경험하고는 “이제는 내가 눈으로 주님을 봅니다” 라고 고백하던 욥의 고백이 우리 각자의 고백이 되는 시간이 되어 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