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은 교회는 다닌다는데, 혹은 예수를 믿는다는데 사는 걸 보면 개차반이야” 우리가 종종 듣고 하는 이런 말은 신앙과 성숙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지만 성숙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보입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은 사람의 관계인 공동체를 이루는데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앞으로 두 달 정도 우리는 이 신앙과 성숙의 문제에 대해서 함께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건한 어른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이는 원하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한 어른이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맺게 되는 자연적인 품성을 말하는 ‘성품’과 그리스도인에게만 열리는 ‘열매’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이 말하는 성령님의 열매 - 사랑, 기쁨, 화평, 인내, 친절, 선함, 신실, 온유, 절제 - 는 사람이 노력으로 당연히 맺을 수 있는 성품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인이 성숙을 추구할 때 우리는 그것을 덕 혹은 윤리라고 말합니다. 어릴 때는 훈육으로, 성장하면서는 의지적 노력으로 덕을 쌓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보기 좋습니다. 인정도 받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성품 자체는 좋을 수 있으나 그것이 영혼의 구원에는 이르지 못하고, 결국에는 ‘자기 의’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면서 그 분의 성품을 닮아가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믿음을 주셔서 영혼을 거듭나게 하시고 의롭다함을 얻게 하십니다. 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되어가는 성화의 시작이 있습니다. 이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그리스도인은 은혜로 의롭다함을 얻고, 은혜로 거룩해집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용서하고 용서받는 삶의 환경을 만들어 갑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관된 주님의 은혜를 받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성령님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윤리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오히려 신앙운동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참된 신앙은 도덕이 아니라 사람의 세계관과 인생관, 그리고 삶에 대한 의식과 태도 전체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윤리가 아니라 복음에 전부를 겁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도덕적 인간이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끝은 결국 ‘자기 의’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 우리는 은혜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열매를 받고 맺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의지와 노력으로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안에서 성령님의 열매가 맺히는 삶을 소망하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믿음이 좋은데 성품이 형편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숙한 믿음은 성숙한 성품을 만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열매이니까요. 내 삶이 은혜 안에서 성숙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내 열매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열매를 가득 맺고 주님의 은혜의 영광을 드러내는 인생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