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사랑의 복음이 어떻게 교회의 문화가 될 수 있을까요? 이 사랑의 복음이 교회의 문화를 형성하게 되면 그것은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되겠지만, 그 여정은 간단치가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은혜의 복음이, 사랑의 복음이 교회의 문화가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도록 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은혜를 받은 증거가 없다는 말이지요.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세우고 18개월을 사역한 후에 그 교회를 떠나자 거기에는 거짓교사들이 들어왔습니다. 자신을 증명하고 자랑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향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사도바울을 의심하고, 그가 진짜 사도임을 증명하는 다른 사도들의 추천서를 가져와 보라고 요구하기에 이릅니다. 이 과정에서 바울은 이들이 은혜를 ‘헛되이’ 받았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 증거는 개인과 공동체의 모습에서 각각 드러납니다.
1.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자랑입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샘솟으면서 자기의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자기 의가 솟구칩니다. 자신의 실제 모습이 보여지고자 하는 모습과 다를 때, 위선이 개입됩니다.
2. 공동체적 차원에서는 율법주의와 세속적인 문화입니다. 율법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판단입니다. 종교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기 시작하면 병원으로서의 교회는 만들어질 수가 없습니다. 또한 유치한 세속주의에 빠집니다. 돈, 직위, 가족, 학력 등이 자랑이 되고 그 자랑에 끼지 못하면 마음이 상하고, 가까운 사람들과 다투게 되는 슬픈 현실이 은혜를 헛되이 받은 교회에서 쉽게 일어납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으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은혜를 제대로 받으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 개인적으로는 자아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그리고 그 시선과 관심은 그리스도께로 옮겨집니다. 사도바울은 자기에게 추천서를 요구하는 고린도교회의 배은망덕한 말에 자존심 상해하지 않습니다. 왜 이 일이 가능합니까? 자신이 자격이 없을 때 은혜를 받았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격을 말하기 시작할 때 은혜는 사라집니다. 이처럼 참된 은혜를 받은 사람은 당연히 주님께로 시선이 옮겨집니다. 나는 십자가의 사랑에 패배한 포로입니다. 내 질그릇이 좀 깨어지더라도 우리 안에 있는 보배인 그리스도가 보인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겁니다. 이런 일이 은혜를 참되게 받을 때 일어납니다.
2. 공동체적으로는 사랑의 복음이 중심이 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아홉가지가 마음에 들지 않고 한 가지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한가지를 가지고 품어보는 사랑의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을 이용해서 내 성공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성공시켜주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선순환되는 공동체를 이룹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 볼까요? So What?
1. 깨어진 것을 회복시키기 원하는 예수님의 소원을 좇아가십시다.
2. 자랑과 가십이 아니라 감사와 기도로 관계를 맺어가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