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온두라스 선교보고 강다윗 선교사.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디모데 후서
죄인을 부르시고 예수그리스도의 군사요, 천사도 흠모하는 선교사의 삶을 살게 하신 주님을 찬송드립니다. 제가말씀과 은혜에 기초하여 지난 20년간의 선교사의 삶을 잘 정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기도합니다.
1. 선교사로 가기전의 나의 삶
저는 1967년 경북 안동 기독교 가정에서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안동에서 학교를 다니며 화가의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저는 87년 세종대학에 입학하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있었던 선교사 보고 대회를 참석하고, 선교사들로부터 큰은혜와 영적 도전을 받았고, 장차 선교사로 살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하였습니다. 교회 개척역사가조금씩 커지자 교회를 이전해야 했습니다. 저는 당시 4학년이었는데, 부모님께 물질을 의지하지 않고 어찌하든지하나님께 쓰임 받고자 아르바이트로 칼을 팔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거절을 당하고 부정적인 말을 들을 땐 위축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역사에 쓰임 받고자 도전하였을 때 두 달 만에 1천오백만원 어치의 칼을 팔아회사로 부터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이 도전 스피릿은 선교사 생활에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 중남미 선교사로서의 삶.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94년 선교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95년 중앙 아메리카 과테말라 선교사로 출발하게되었습니다. 오전에는 스페인어 어학원을 다니며, 오후에는 캠퍼스에 나가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로서의 이상과 현실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훈련받지 못한 애굽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저는 선교사 초기에 선배 선교사님들을 동역하거나 배우기보다, 불평하고 판단하며 동역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이 와중에 친구와 함께 여행을하다가 차가 전복되는 대형사고를 당했습니다. 쇠골이 3조각이 나고 척추뼈를 심하게 다쳤습니다. 의사는 저에게반신불구자가 될 거라고 진단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나의 죄를 자복하고 다시 선교사로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기적적으로 보조 의료기구의 도움 없이 한 달 만에 걸어 다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시,한국으로 돌아가 파라과이 선교사로 안수 받았습니다.
1998년, 파라과이에 도착하고 아내는 대학생들을 가까이서 섬기고자 열심히 수능을 준비하여 아순시온 국립대에 입학하였습니다. 저 또한 열심을 다해 농대 캠퍼스를 심방 다녔습니다. 이때 성실한 ‘오스카르’라는 수의대생을 만나 인내심을 갖고, 한 양을 말씀으로 꾸준히 도움으로 당시 목자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학과 과목을 낙제하는 유급생이였지만, 선교사들이 말씀으로 인내하고 돕자 학과에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고 믿음이성장하였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모두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아순시온 국립대 수의대 교수가 되었습니다.
반면, 파라과이는 자비량하기에는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저는 자립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온갖 물건들을 팔면서 자립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계란을 사서 식당을 돌렸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쌀과 식용류도 사서 돌렸습니다.요거트와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초등학생들에게 팔았습니다. 40도 이상 되는 뜨거운 날씨에 자비량을 하기 위해차로 장사하는 것이 참으로 힘들고 고된 일이였지만, 파라과이 영혼들을 가까이서 보고 배울 수 있어 감사히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2002년 사라 베리 선교사님께서 중남미 33개국을 개척하자는 방향에, 저희 가정이 온두라스 선교사로 추천되었습니다. 저희는 믿음으로 온두라스에 도착하여, 2개월치 월세를 내고 폐차직전의 차를 구입하니, 갖고 있던물질들이 거의 다 떨어졌습니다. 저는 가진 것이 거의 없어, 집 거실에 식품가게를 열었습니다. 송판을 잘라서 선반을 만들고, 음료수, 과자와 야채들을 사서 동네 사람들에게 팔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식품들을 팔면서 온두라스의 현실을 눈으로 보고 그들의 아픔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가게에 오는 손님들 50% 이상이 아이만 데리고 사는미혼모들이었습니다. 여자아이들은 사춘기 때에 무책임한 어른들의 행동으로 아이를 가지고, 그 아이는 할머니호적에 올리고 살아갑니다. 온두라스는 문맹율도 60%으로 무지하고, 정치적으로는 부정부패가 심각하며, 중남미에서 매우 가난한 나라중 하나입니다. 치안도 최악으로 조직폭력배들이 경찰들보다 더 많아 치안의 부재의 나라입니다. 참고로, 살인사건 발병률이 한국은 10만 명당 0.9명입니다. 그러나 온두라스는 10만 명당 92명입니다.그리하여 범죄조직들은 법을 집행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