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8:1-15>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많은 무리가 그를 따라왔다.
나병 환자 한 사람이 예수께 다가와 그에게 절하면서 말하였다. "주님, 하고자 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서 그에게 대시고 "그렇게 해주마. 깨끗하게 되어라" 하고 말씀하시니, 곧 그의 나병이 나았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바쳐서, 사람들에게 증거로 삼도록 하여라" 하셨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다가와서, 그에게 간청하여
말하였다. "주님, 내 종이 중풍으로 집에 누워서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가서 고쳐 주마."
백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나는 주님을 내 집으로 모셔들일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마디 말씀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내 종이 나을 것입니다.
나도 상관을 모시는 사람이고, 내 밑에도 병사들이 있어서, 내가 이 사람더러 가라고 하면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고 하면 옵니다. 또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고 하면 합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놀랍게 여기셔서,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 아무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과 서에서 와서,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시민들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서,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시각에 그 종이 나았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셔서,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셨다.
예수께서 그 여자의 손에 손을 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그 여자는 일어나서, 예수께 시중을 들었다.
<온전한 기도를 위한 단계>
2018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 한 해는 좋으신 주님을 만나고 자라가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특히 올해는 “간절한 기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이라는 표어에 걸맞게 주님 안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더욱 주님을 알아가는 시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본문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을 합니다. 예수님과 대화하는 것이 기도라면 이 사람들은 각각의 스토리 속에서 예수님과 대화하는 것을 통해 우리에게 기도가 성장하는 단계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한센병에 걸린 사람을 통해서 보여주는 “간구”의 기도입니다. 지금이야 그리 큰 병이 아니지만 이 병은 3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도 불치에 가까운 병이었습니다. 한센병에 걸린 분들은 한 곳에 모여서 수용생활을 해야 했고 이 병이 없는 사람들과의 접촉은 철저하게 금지되었습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의 시대는 더했습니다. 이들이 사람들을 만나서 율법에서 말하는대로 길에서 비켜서서 얼굴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치지 않으면 돌에 맞아죽어도 괜찮은 시대를 살았습니다. 이러한 때에 한센병에 걸린 한 사람은 예수님 주변을 가득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을 뚫고 와서 그 분 앞에 나아옵니다. 이것은 목숨을 건 행동입니다. 주님 앞에서 생명을 거는 것과 같은 절박함으로 나아와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내가 낫게 해 주십시오”입니다. 나의 문제를 주님께 내어놓고 기도하고 또 그것에 응답받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주님을 더 깊이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일은 아름다운 신앙체험은 될 수 있겠지만 주님께 칭찬받을 만한 믿음의 증거는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라고 이야기 하십니다. 우리는 이기적이기에 신앙도, 기도도, 그 출발점은 항상 우리 자신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한계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신앙의 출발점으로 쓰여야지 종착역이 되면 안됩니다. 이기적인 목적으로 주님을 찾고 기도하기 시작했더라도, 우리의 신앙과 기도는 그 다음 단계로 진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두 번째 기도의 단계는 백부장을 통해 보여주는 “중보의 단계” 입니다. 그는 자기의 문제나 자기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도 아니고 신분도 맞지 않는 사람을 위해 기도했을 때 주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십니다. 중풍병에 걸린 하인이 낫게되는 경험이 자기의 경험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무너지는 가정이 회복되는 것을 본다면 그 회복은 기도한 우리의 경험이 됩니다. 그러므로 남을 위해서 기도하는 중보는 나의 신앙에 유익을 줍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에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던 하인의 병을 위해서 간구한 성숙한 믿음이었습니다. 이 중보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가 이르러야 할 두 번째 단계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 단계는 아닙니다.
세 번째 단계는 베드로의 장모가 낫는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집니다. 이 말씀에서 어느 곳에서도 베드로가 자기의 장모님을 위해서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친히 그녀를 고쳐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그에게 있어야 할 것을 미리 아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 곳이 우리가 다다라야 할 기도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사도행전 4:29-31을 보면 베드로와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전하는 것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던 순간에 드렸던 기도가 나옵니다. 여기에서 그들은 “주님의 종들이 참으로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말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이처럼 “나는 주님의 일을 하고 주님은 내 일을 맡아서 해 주시는 기도와 삶”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기도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이 단계를 “사귐의 기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도가 간구와 중보의 단계를 넘어 주님과 사귀고 동행하는 곳까지 자라가는 우리 식구들이 되어 가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