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9:6-10>
어수룩한 길을 내버리고, 생명을 얻어라. 명철의 길을 따라가거라" 하였다.
거만한 사람을 훈계하면 수치를 당할 수 있고, 사악한 사람을 책망하면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거만한 사람을 책망하지 말아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렵다. 지혜로운 사람은 꾸짖어라. 그가 너를 사랑할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훈계를 할수록 더욱 지혜로워지고 의로운 사람은 가르칠수록 학식이 더할 것이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이를 아는 것이 슬기의 근본이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사전적인 의미로 지혜란 “선하고 올바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통합적이고 직관적인 판단력”을 의미합니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가지고 싶은 삶의 특징 중에 하나입니다. 성경으로 돌아와서 ‘지혜’라고 하면 누구보다 솔로몬 왕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는 위대한 왕이었던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서 주전 970년 경에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형제들의 난으로 인해 정치적 수업을 조목조목 받지 못했던 솔로몬은 이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제사를 드리는 곳에 가서 동물 천마리를 불에 살라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런 솔로몬의 진지함과 성실함에 백성의 마음도 감동하고 하나님의 마음도 감동합니다.
솔로몬의 간절함에 감동하신 하나님은 그날 밤에 그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기를 바라느냐? 나에게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솔로몬은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을 구합니다 (열왕기상 3:9).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그의 대답을 기뻐하시며 지혜와 총명과 함께 부귀와 영화도 함께 주십니다.
솔로몬이 여기에서 하나님께 구한 ‘지혜’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당시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호크마’라는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명철, 지식, 분별력 등으로 번역되는 그와 유사한 단어들도 아니었습니다. 이 곳에 쓰이는 말은 “레브 쇼메아”라는 단어로서 직접적으로 번역하면 ‘계속해서 듣고 있는 마음’을 받기를 소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의 말을 끊거나 지레짐작하거나 건성으로 듣거나 내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말을 충분하게 경청하는 마음을 하나님께 소원하고 이 소원을 하나님이 기뻐하셨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지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듣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두 방향에서 듣는 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로부터 계속해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삶 속에 하나님께서 소원하시는 일이 어디에 있는지 경청하는 마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청하는 것은 말씀과 기도로 가능합니다. 주님은 자신이 하실 일을 모두 말씀에 써서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세상으로 분주해서 들리지 않던 하나님의 음성이 내게 들리게 됩니다. 그 때에 비로소 우리는 이전에는 머리로만 알고 있던 주님이 마음으로 느껴지는 시간이 됩니다.
둘째는 사람으로부터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말로 마음의 벽을 치는 것이 잦은 시대입니다. 이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힘이 들고 답답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들어달라는 외침을 토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레브 쇼메아’를 가진 사람은 한 사람의 말에서 그 사람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깊은 물과 같아서 보이지도 않고 측량하지도 못하는 사람의 마음에서 그 사람이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길어낼 수 있습니다 (잠언 20:5). 내 말을 하고 싶은 충동을 참고 상대의 말을 듣는 것, 관심을 가진 경청은 듣는 사람에게 치유의 경험을 줍니다 (잠언 18:13; 12:18). 이러한 치유 중 우리에게 가장 최고의 회복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구원의 경험입니다. 천벌을 받아 마땅한 우리가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온 몸으로 막으신 예수님이 우리 앞에 서 있는데 그것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의 이야기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마음 (레브 쇼메아)을 가지고 죽음이 아닌 생명을 선택하며 이웃에게 회복의 삶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