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6편>
“주님께서 시온 에서 잡혀간 포로를 시온 으로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을 꾸는 사람들 같았다.
그 때에 우리의 입은 웃음으로 가득 찼고, 우리의 혀는 찬양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그 때에 다른 나라 백성들도 말하였다. “주님께서 그들의 편이 되셔서 큰 일을 하셨다.” 주님께서 우리 편이 되시어 큰 일을 하셨을 때에, 우리는 얼마나 기뻤던가!
주님, 네겝 의 시내들에 다시 물이 흐르듯이 포로로 잡혀간 자들을 돌려 보내 주십시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사람은 기쁨으로 거둔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사람은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온다.”
<심지 않으면 거두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갔던 유대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70년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다시 유대로, 시온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부른 찬양으로 보입니다. 페르시아의 첫 황제였던 고레스가 유대인의 귀환 명령을 내렸을 때, 지도자였던 스룹바벨과 함께 돌아온 사람은 약 5만명, 하지만 이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페르시아에 남아있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포로들을 시온으로 돌려보내실 때 꿈꾸는 사람들처럼 기뻤다고 합니다. (1절) 웃음과 찬양으로 가득했고 주변 나라 백성들은 “주님께서 그들의 편이 되셔서 큰일을 하셨다”라고 말합니다. (3절) 이 기쁨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그 안에 머물며 본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에게 있었던 감정일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잃은 이들은 현실에 굴복하며 삽니다. 문제를 산더미보다 더 크게 바라보며 하나님을 잊고 삽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시온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네겝의 시내들에 다시 물이 흐르듯이 포로로 잡혀간 자들을 돌려보내 주십시오.” (4절) 네겝은 유대의 남쪽 지역으로 사막인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과 역사를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의 땅보다 더 큰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깁니다. 물이 흐를 수 없는 곳에 물이 흐르고, 생명이 살아갈 수 없는 곳에 생명이 태어날 것을 보는 눈이 생깁니다.
이 하나님을 신뢰하면 말라 비틀어져 보이는 우리의 삶에도 다시 물이 흐를 것입니다. 때로는 이 과정이 실패의 과정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실패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실패가 쌓여도 그것을 딛고 부르심의 상을 좇아 앞으로 몸을 내 밀면서 달려가십시다. 내 욕심과 우상의 포로가 되어서 살아가는 우리도 해방시키고 다시 자유와 해방의 땅으로 되돌리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걸 믿어드립시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십시다. 우리 삶에서 말라 비틀어져 다시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곳에 생명이 일어날 것입니다. 삶의 걱정과 욕심에 갇혀 절대로 거기서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곳에서 해방을 경험할 것입니다.
본문의 5-6절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거둔다는 말을 두 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왜 씨를 뿌리는 사람이 눈물로 뿌릴까요?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고생스럽더라도 나중에 좋은 일이 있다는 말로 들립니다. 하지만 이렇게만 보기에는 이 말씀은 너무 깊습니다.
첫째로, 이 말씀은 “죽음에 대한 경외”를 이야기합니다.
고대 이스라엘 주변의 여러 지역에서는 씨를 뿌릴 때 자기들이 섬기던 오시리스 신을 장례지내는 상징으로 장송곡을 불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곡식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땅에 떨어진 씨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죽음으로 삶을 얻는 진리에 대해서 예수님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이 죽지 않으면 생명을 낳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며 자신이 모든 이들을 위한 밀알이 되셨습니다. 이 같은 삶이 우리가 닮아야 하는 주님의 삶이라는 것을 다 알면서도 자존심 하나 때문에, 내가 받을지도 모르는 상처 때문에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삶! 이러면 생명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이 말씀은 “우는 일과 상관없이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울면서 씨를 뿌리는 이유는 씨 뿌리는 것과 무관하게 우리를 울게 하는 슬픈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꼭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눈물 때문에 씨 뿌리는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아프면서도 해야 하는 그 일! 그것이 예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는 일입니다. 그것이 사명의 자리에 서는 일입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씨앗의 자리에 섭시다. 우는 일과 상관없이 해야 하는 일을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