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0:18, 26>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시려고 기다리시며, 너희를 불쌍히 여기시려고 일어나신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주님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은 복되다.
주님께서 백성의 상처를 싸매어 주시고, 매 맞아 생긴 그들의 상처를 고치시는 날에, 달빛은 마치 햇빛처럼 밝아지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아져서 마치 일곱 날을 한데 모아 놓은 것 같이 밝아질 것이다.
<하나님이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는 기다림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조급함이 가득합니다. 먼저 가려고 다투고 투쟁하고 경쟁하는 사회로 변해 왔습니다. 하지만 신앙은 기다림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120년을 기다리며 방주를 지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아들의 약속을 받은 후 25년을 기다려서야 이삭을 얻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700년의 기다림이 있은 후에 비로소 다윗의 시대에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는 총알같은 속도로 오지 않고 때로는 빙하가 바다 위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느리고 완만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이들은 끈기있게 기다려야 합니다. 영적 성숙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교회력에는 두 번의 기다림의 절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기다리며 경건하게 사는 시간인 사순절 (Lent)과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보내는 대강절 (Advent)입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대강절의 시간이 하나님을 기다리는 복이 함께 하는 계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18절은 “주님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은 복되다”고 합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오늘의 본문은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복된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일방적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상호관계입니다. 하나님의 기다림이 우리의 기다림을 만나서 거기에서 하나님의 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기다리실까요? 오늘의 본문은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시려고 기다리시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참으며 벼르고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다림은 은혜를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사건은 이 은혜의 기다림이 보여주는 극치입니다.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때까지 기다리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이전의 시대에 자기의 백성으로 만든 사람들이 자기에게 돌아오기를 안타깝게, 마음 족이며 기다리셨던 하나님은, 예수님의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도 저와 여러분이 그 분에게 돌아와서 은혜의 자리로 들어가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찬송가 305장이 말하는 것처럼 “밤마다 문 열어놓고 마음 졸이시며 나간 자식 돌아오기만 밤새 기다리시는” 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이 기다림이 있었기에 우리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기다림이 먼저 있었기에 우리는 우리의 기다림으로 하나님의 복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기다리시지만 또한 우리를 불쌍히 여기려고 일어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고통 받는 것을 그냥 보지 못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 기다리시던 하나님은 고난의 자리에 서 있는 자기의 자녀를 바라보며 그들을 긍휼히 여기기 위해 일어나십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치던 두 시각장애인의 앞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던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이나 앓았기에 나음에 대한 소망조차 없어졌던 병자를 고치셨던 예수님은, 지금 오늘 우리의 삶에서 고난과 고통 속에서 아파하는 우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그 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기다리셨던 그 분은 우리의 외침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그러니 늘 최상의 것을 준비하시고 제공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이 받을 복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 넘치는 대강절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