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1-8
“그 행실이 온전하고 주님의 법대로 사는 사람은, 복이 있다.
주님의 증거를 지키며 온 마음을 기울여서 주님을 찾는 사람은, 복이 있다.
진실로 이런 사람들은 불의를 행하지 않고, 주님께서 가르치신 길을 따라 사는 사람이다.
주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의 법도를 주시고, 성실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내가 주님의 율례들을 성실하게 지킬 수 있도록, 내 길을 탄탄하게 하셔서 흔들리는 일이 없게 해주십시오.
내가 주님의 모든 계명들을 낱낱이 마음에 새기면, 내가 부끄러움을 당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께 감사하겠습니다.
주님의 율례들을 지킬 것이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복 있는 길을 배우고 가르칩니다>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행복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필요한 것이 있고, 큰 걱정이 없을 때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또한 지금 먹을 것, 잘 곳이 있고, 건강도, 시간도 있음에도 우리는 더 행복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살까요? 아니, 우리는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그의 책 [몰입의 즐거움]에서 행복은 단순히 자신이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행복의 기준이 단순히 지금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높은 차원의 삶을 추구할 때 느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라는 책에서 인간의 행복은 심적인 상태가 아니라 미덕을 실천할 때 경험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미덕을 실천함으로, 다시 말해서 선하게 살아감으로 행복에 이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윤리적이고 자기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의 말씀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첫째, 행복은 적극적인 실천에서 옵니다.
오늘 본문은 먼저 “그 행실이 온전(한)...사람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좀 더 풀어서 설명해주는 것이 시편 1:1입니다. 행실이 온전하다는 말은 결국 악인이 되지 말고, 죄인이 되지 말고, 오만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행복은 우리가 그저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며 살 때 오는 소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 그에 알맞은 적극적인 행동을 하라고 가르칩니다. 악인이, 죄인이, 오만한 자가 되지 않겠다는 마음의 결단과 실행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행복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윤리와 연결이 됩니다. 그런데 적극적인 실천의 윤리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우리는 이기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윤리적으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늘 옳은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행실이 온전해서... 행복해진다”는 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예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말씀은 행복해지기 위해 하나 더 행동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둘째, 행복은 “주님”의 법대로 사는 실천에서 옵니다.
1절 후반절은 “주님의 법대로 사는 사람은, 복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시편 1:2도 동일하게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행복에 대한 이야기 중 참 의미 있는 말씀이 신명기 33:29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는 백성이 누구냐?” 광야 40년의 거친 생활을 겪고, 가나안 땅 입성을 목전에 두었지만 여전히 불투명하고 암담한 삶을 앞에 두고, 아직도 싸워야하는 백성들이 그들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모세는 그들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그들에게 미래는 무조건 지금보다 나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심는 것이 아닙니다. 더 힘든 사람들과 비교하며 그래도 너희들은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떻게든 지금 살아있고 그만하면 평균값의 인생이니 행복하다고 생각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이들은 고단한 광야의 여정에서 얼마든지 악인의 길에, 죄인의 길에 설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쓰러지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선택했으므로 “너희는 행복한 백성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법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은 내 능력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놓지 않음으로 그 분이 주는 능력으로 우리의 삶이 행복해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