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9:12-14>
12. 너희가 나를 부르고, 나에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의 호소를 들어주겠다.
13. 너희가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날 것이다. 너희가 온전한 마음으로 나를 찾기만 하면,
14. 내가 너희를 만나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너희를 포로생활에서 돌아오게 하겠다. 내가 너희를 쫓아 보냈던 세상의 모든 나라, 모든 지역에서 너희를 모아 오겠다. 내가 너희를 포로로 보냈으나, 나는 너희를 그 곳에서 너희의 고향으로 다시 데려오겠다. 나 주의 말이다.
<간절한 기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심장박동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릴 때, 내일이 열려 밝은 아침이 오리라. 모두 함께 싸우자. 누가 나와 함께 하나? 저 너머 장벽 지나서 오래 누릴 세상. 자, 우리와 싸우자! 자유가 기다린다 (Do you hear the people sing?).”
영화 레미제라블은 두 가지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는 죄를 지은 장발장이 평생 죄의 멍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베르 형사를 피하다가 구원받는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는 프랑스의 가난한 민중들의 봉기입니다. 더 이상 멍에를 지기 거부하는 학생들의 혁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마지막까지 나오는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이라는 노래는 이 영화의 주제가 두 번째의 주제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대학생들의 순수하지만 서툴렀던 혁명은 실패합니다. 반면 한 번 죄인은 영원한 죄인이라는 자베르 형사의 공격을 받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장발장의 불구의 의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내는 열매를 거둡니다.
성경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3000여년 전 노예의 후손들이 도시 하나를 건설했습니다. 예루살렘이라는 곳이었지요. 거기서 그들은 400여년간 자유로왔습니다. 하지만 바벨론에 점령당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시 노예로 잡혀갑니다. 이 때, 조상들을 통해 얻은 자유를 잃지 않겠다는 독립의 외침에 가장 앞장선 사람들이 예언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반 바벨론 정상회담이 열리자 그곳에서 소리 높여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축복하셔서 승리하게 하시고 마침내 자기들에게 자유를 주실 것이라고 외칩니다. 이에 혼자 반대한 예언자가 예레미야였습니다. 그는 민족과 나라의 자유와 평화는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회개하고 각 개인의 죄악에서 벗어나려고 싸울 때에 얻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자기 이웃의 아내들과 간음하였고, 나의 이름을 팔아, 내가 시키지도 않은 거짓말을 하였다. 이것을 내가 안다. 내가 바로 그 증인이다. 나 주의 말이다.” 이것이 그들의 실체였다면 이들의 죄악들이 모여 나라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무시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죄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을 뿐 아니라 벗어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의 말에 두려워할 유다민족을 위해서 하나님은 희망과 번영의 약속을 허락하십니다 (11절). 하지만 12-14절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소망을 받기 위해 회복해야 하는 것은 그에게 나아와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결국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처음부터 기도, 즉 하나님과의 대화와 순종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삶에 늘 찾아오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은 다시금 우리를 자신에게 맡기기를 원하십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라. 두렵다고 탈선하지 말라. 삶의 근심에 눌려 자유를 빼앗긴 삶을 살아가지 말아라! 근심하고 두려워할 시간에 차라리 기도하고 찬양하라! 일희일비하지 마라! 그리고 네가 있는 곳을 위해 기도하라! 그 곳이 평안해야 너희도 평안할 것이다.”
오늘은 2018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우리 자신의 변화와 공동체를 위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새로운 삶의 장소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