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3편
1.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2.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서 그 옷깃까지 흘러내림 같고,
3.헤르몬의 이슬이 시온 산에 내림과 같구나. 주님께서 그곳에서 복을 약속하셨으니, 그 복은 곧 영생이다.
"목장이 구원의 통로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십자가와 부활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보여주셨습니다.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신 후에 그 분은 자기의 사역을 이어나가기 위한 도구로 각 사람을 세우시지 않고 교회를 남기셨습니다. 마태복음 16:16에서 베드로의 아름다운 신앙고백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라는 말을 들으신 후에 예수님은 그 신앙고백의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8절)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안에서 머물기를 선택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사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사람의 일생을 사명과 떨어뜨려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때때로 주님을 영접하고 그 분 안에서 걸어가다가 지치거나 엇길로 가는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명 속에서 내 삶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삶과 사명은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 이후 사도행전은 우리에게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는가를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베드로와 바울은 두 주인공이라고 할만큼 중요한 역할을 감당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고도 특이하게도 사도행전은 이들의 삶 자체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들을 통해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고 튼튼해졌는가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베드로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말씀에서 퇴장합니다. 감옥에 갇혀 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거기에서 빠져나온 후에 자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자기가 감옥에서 나온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달라고 얘기한 후에 “거기에서 떠나 다른 곳으로 갔다” (사도행전 12:17)이라고 하며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집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교여행을 다 마치고 예루살렘에서 사로잡혀 로마로 간 바울의 일생이 그 후에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별반 관심이 없습니다. 그가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주님을 어떻게 전하게 되었는가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사도행전 28:30-31) 신약성경의 모든 서신서들은 빌레몬서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교회를 향해서 쓰여졌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은 약점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케 되었을 때, 그들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를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를, 바울을 통해서 이방인의 교회들을 세우는데 위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공자님이나 석가의 제자들은 그 분들이 돌아가신 후 종교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교회를 남겼지요. 우리 안에 변화를 소망하는 부분이 있습니까? 그러면 그 변화를 위해서 가만히 앉아 기도한다고 다 해결되지 않습니다. 제자들의 변화가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일어났듯, 우리의 변화도 교회를 세우는 데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주신 은혜와 능력을 가지고 주님께서 간절히 소원하시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세우고 있는 시온영락교회는 각 목장들이 연합해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목장을 세우는 것이 곧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면 어떤 목장을 세워가야 하나요? 그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한 말씀이 시편 133편입니다.
첫째로, 형제자매가 서로 더불어 사는 것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모두가 똑같은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머리와 몸이 합쳐져서 전체를 이루듯, 각자가 자기의 자리에서 자기의 일을 할 때 전체가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즉, One function을 위해서 협력할 때 더불어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목장이 함께 걸어가는 길이 “생명이 살아나는 영혼구원과 제자양육”의 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속도는 다를 수 있지만 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목장을 만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