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누리고 나누는, 주님의 소원"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유대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롬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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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1-10 [새번역]

1.그 다음에 십사 년이 지나서, 나는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2.내가 거기에 올라간 것은 계시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설명하고, 유명한 사람들에게는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달리고 있는 일이나 지금까지 달린 일이 헛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3.나와 함께 있는 디도는 그리스 사람이지만, 할례를 강요받지 않았습니다.

4.몰래 들어온 거짓 신도들 때문에 할례를 강요받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자 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자유를 엿보려고 몰래 끼여든 자들입니다.

5.우리는 그들에게 잠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진리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6.그 유명하다는 사람들로부터 나는 아무런 제안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든지, 나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그 유명한 사람들은 나에게 아무런 제안을 하지 않았습니다.

7.도리어 그들은, 베드로가 할례 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과 같이, 내가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8.그들은, 베드로에게는 할례 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사도직을 주신 분이, 나에게는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사도직을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9.그래서 기둥으로 인정받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인정하고, 나와 바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서, 친교의 악수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이방 사람에게로 가고, 그들은 할례 받은 사람에게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10.다만, 그들이 우리에게 바란 것은 가난한 사람을 기억해 달라고 한 것인데, 그것은 바로 내가 마음을 다하여 해 오던 일이었습니다.


"사명 안에서의 연합(Unity in calling)"


바울은 예수님을 믿은 후 14년이 지나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올라갑니다. 이 때 그는 두 사람과 함께 갑니다. 바나바와 디도였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을 지금의 사역의 자리로 불렀고 그와 함께 동역자였습니다. 그리고 디도는 그리스인으로서 처음에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바울에게서 복음을 듣고 이제는 바울의 든든한 사람이 된 바울 사역의 열매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11년 전에는 자기가 받은 복음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처럼 교회의 지도자들을 만나지 않았던 바울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목회를 사도들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에게 주신 사명을, 그로 인해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사역을 설명할 때 그는 말로만 한 것 같지 않습니다. NIV 성경은 바울이 복음을 설명하는 부분을 “set before them the gospel”이라고 번역합니다. 이는 우리말로는 ‘보여주었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자기의 목회와 사역에 대해서 무엇으로 예루살렘 교인들에게 보여주었을까요? 예! 디도를 통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디도는 바울이 받은 사명의 열매였고 그를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복음이 이방 사람들에게서도 전파되고 있음을 눈으로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복음은 들려지는 것을 넘어 보여지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 속성에서 벗어나 새 속성을 덧입는 삶의 연습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합니다. 나의 신앙을 보여줄 수 있는 나의 디도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로 인해서 변화 받은 사람이어도 되고 내 삶 속에서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것이 변화된 삶의 자리여도 됩니다. 나의 디도! 내게 전해진 복음의 증거! 이처럼 나의 신앙을 “보여주는” 삶의 열매가 우리의 삶에서 주렁주렁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가시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은 이 두 번째의 예루살렘 방문에서 자기의 사역을 참 열심히 보여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 중심으로 세워지던 유대인들 중심의 교회와 자기와 바나바 사역이 이루어가던 이방인 중심의 교회가 서로 나누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던 기도는 “아버지와 내가 하나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였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하나됨은 이처럼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에베소서 4:3에서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 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이 그 피로 세우신 시온영락교회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됨을 힘써서 지켜 가십시다.


하나됨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일까요? 9절의 말씀은 그 일을 위한 사도들의 본이 나옵니다. 사도들에게 바울은 나이도 적고 권위에서도 떨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바울과 그의 사역을 인정하고 안을 수 있는 넉넉함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볼 때 지위나 인격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중심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넉넉함이 있을 때에 우리는 작은 차이를 무시하며 같은 방향으로 함께 걸어갈 수 있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영혼구원하여 제자삼는” 일에 힘을 쏟는 교회입니다. 이 방향이 같다면, 작은 차이에는 넉넉해짐으로 교회의 하나됨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사명 안에서 연합하며 함께 걸어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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