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사밧 왕은 아합왕과 함께 했던 전쟁에서 겨우 살아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또 다른 전쟁을 맞이합니다. 암몬과 모압의 연합군이 유다를 치고 들어올 때, 이미 이전의 전쟁에서 패전했던 유다는 그들을 방비할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인 여호사밧은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편을 드시는 하나님 그들에게 벌을 내리지 않으시렵니까? 우리를 치러 온 저 큰 대군을 대적할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고, 어찌할 바도 알지 못하고, 이렇게 주님만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역대하 20:12)
이처럼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상황이 왔을 때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오늘의 말씀은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1. 이 때 우리는 그 두려운 상황이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15절)
“온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과 여호사밧 임금님은 들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적군이 아무리 많다 하여도, 너희들은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아라. 이 전쟁은 너희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맡아 하는 것이다.”
전쟁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다스리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우리를 다스리시는 주님이 우리의 전쟁을 싸워주실 것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싸우시는 전쟁이므로 우리에게는 승리가 있습니다. 두려운 상황을 ‘내가’ 대면해서 ‘내가’ 싸워서 ‘내가’ 결과를 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하시는 전쟁임을 알고 그 일에 동참하는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되면 됩니다.
2. 이 때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17절)
“이 전쟁에서 너희가 싸울 것이 없다. 너희는 대열만 정비하고 굳게 서서, 나 주가 너희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는 것을 보아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겁내지 말아라. 내일 적들을 맞아 싸우러 나가거라. 나 주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그 분의 행동 양식일 뿐 아니라 존재양식이기도 합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의 의미는 “내가 너와 함께 있는 것처럼 앞으로도 함께 있을 것이다”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이라는 예수님의 별명의 의미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유언의 마지막에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은 그 분의 존재양식입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존재하는 곳에 주님이 늘 함께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내 삶을 이해하는 누군가가 나와 함께 있음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위로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시기로 작정하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알 때 우리는 어찌할바를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위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3. 이 때 우리는 감사하고 주님을 찬양하여야 합니다. (18-19, 21-22)
전쟁은 주님께 속한 것이고 주님은 모든 강력을 파하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니 우리는 이미 승리한 전쟁을 지금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찬양이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미 승리를 경험한 후 감사하게 되면 그 이전은 불안과 걱정으로 채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찌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할 때 감사하고 찬양해놓고 하나님의 일을 보는 겁니다.
그 때 주님은 오늘 22절과 같은 결과를 주십니다. “노래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놀를 부르니 주님께서 복병을 시켜서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 산에서 온 사람들을 치게 하셔서, 그들을 대파하셨다.”
오늘 하루 이 은혜 속에서 살아가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