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35
35. 아주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일어나서 외딴 곳으로 나가셔서, 거기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새벽을 깨우는 기도"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기도의 필요성에는 공감합니다. 기도가 필요하긴 하지만 항상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댑니다. “내가 새벽에 기도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것은 아무리 봐도 무리야.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바쁜데 어떻게 기도할 시간을 마련할 수 있겠어? 하나님도 그런 나를 이해하실 거야!” 이런 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하지만 기억해보십시오. 예수님은 결코 한가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분은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셨고 병자들을 치료하였습니다. 우물에 기대서 쉬어야 할 만큼, 풍랑이 이는 뱃전에서도 잠이 들 수 있을 만큼 그 분은 군중 속에서 피곤한 사역을 지속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분은 군중에 휘둘리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사역의 보이지 않는 부분, 즉 기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피곤하게 종일 사역을 하신 후에도 예수님은 늘 조용한 곳으로 새벽에 나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특별히 중요한 일이 있을 때에는 밤새 기도하시는 본을 보이기도 하셨지요. (누가복음 6:12-13) 기도는 절대로 뭔가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하는 넋두리가 아닙니다. 능력으로 따지자면 예수님은 역사상 가장 큰 능력을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그 분은 세례 직후 40일간의 기도로 사역을 시작하셨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마지막 사역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일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보이는 사역의 파워는 이 보이지 않는 기도의 사역에서 공급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서 일이 많거나 어려운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기도의 교제가 부족한 데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습니다. 그 통로가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힘에 겨운 인생의 짐들을 하나님께 맡기는 연습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보는 능력은 있으나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 속에서 홀로 감당하지 못할 의무를 지고 계속 짓눌리다 보면 그 과도한 무게에 눌려 버립니다. 우리 삶에 가장 위험한 일은 일시적인 것에 부대껴 영원에 대한 목마름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무리 좋은 고성능 배터리도 결국 방전되고 말 듯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기도하지 않으면 고갈되고 탈진합니다. 기도는 삶에 에너지를 계속 공급해주는 전원과도 같습니다.
공동체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부모가 기도하지 않으면 자녀는 끝난 겁니다. 부부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그 부부관계는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귀는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사자처럼 부지런한데 우리는 영적으로 게으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우리가 하는 일을 멈추고 자기를 깨워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때로 우리 삶에 고난을 당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기도를 배울 수 있는 학교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기도의 용사 중 광야를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난 속에서 기도의 습관을 배우십시오.
새벽기도는 특별한 유익이 있습니다. 새벽을 깨우면 삶이 심플해집니다. 새벽을 깨우기 위해 밤을 잠을 자는데 사용함으로 죄의 자리로 들어가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경기를 앞둔 운동선수들이 고도로 절제하듯, 우리도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 내 삶을 좀 절제해 보십시다. 또한 새벽은 하나님께 집중하기 가장 좋은 때입니다. 이 길이 내 인생을 바꾸는 축복의 길임을 믿고 새벽기도를 회복해 보십시다. 2019년 한 해, “나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겠다”라는 결단을 해볼 수 있는 사람이 되십시다. 기도가 뚫리면 내 길이 뚫립니다. 그러므로 기도로 인생의 문제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