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3편 1-2절
1. 하늘 보좌에서 다스리시는 주님, 내가 눈을 들어 주님을 우러러봅니다.
2. 상전의 손을 살피는 종의 눈처럼, 여주인의 손을 살피는 몸종의 눈처럼, 우리의 눈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길 원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우러러봅니다.
"그리스도인의 역설 3: 보이지 않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보면서 살아가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지 못하며 살고 있습니다. 영국의 TV 프로듀서인 존 로이드는 TED 강연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목록들”이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려줍니다.
물질들은 보이는 것 같지만 한없이 가까이 접근하면 에너지만 남아있게 됩니다. 중력은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뭔지, 왜 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있지만 서로의 마음은 보지 못합니다. 시간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과거는 미화되고 미래는 보이지 않습니다. 원자는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빛이 비추는 것은 볼 수 있지만 빛 자체를 볼 수는 없습니다. 은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주에는 천억개의 은하가 있다고 하지만 우리가 맨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다섯 개에 불과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목록을 작성하자면 “우리와 관련된 모든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에디슨은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100만분의 1퍼센트도 모른다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은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역설입니다. 그럼 과연 우리는 어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면서 살고 있을까요?
첫째로,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봅니다. (시편 123:1-2)
말씀은 하나님이 ‘영’이시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4:24) 이 말씀은 근본부터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영이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요? 앞에서 말씀드렸던 존 로이드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인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게 보이는 것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유치한 일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삶 속에서 경험되는 하나님을 보고 예배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보호를 볼 수 있습니다.
시편 121편은 이러한 하나님의 보호에 대해서 너무나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네가 헛발을 디디지 않게 지켜주신다. 너를 지키시느라 졸지도 않으신다... 낮의 햇빛도 너를 해치지 못하며, 밤의 달빛도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엘리사의 사환이었던 게하시는 자기들을 죽이기 위해서 다가오는 아람왕의 군대를 바라보고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그 때 엘리사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 그의 눈이 뜨여져서 자기를 두루 에워싸고 있는 하나님의 군대를 볼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열왕기하 6:15-17) 그 때 엘리사가 했던 이야기,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들의 편에 있는 사람보다는 우리의 편에 있는 사람이 더 많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보호하십니다. 이 주님의 보호를 눈으로 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셋째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도구는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1; 고린도후서 4:18)
한 포로 수용소 벽에서 발견된 글입니다. “햇살이 비치지 않더라도 태양이 있음을 믿는다. 보이지 않더라도 사랑이 있음을 믿는다. 침묵하시더라도 하나님께서 계심을 믿는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쪽을 택한 눈을 가진 사람의 고백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선택을 함으로 믿음으로 인한 담대함이 고백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나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