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가 속한 해외한인장로회 서북노회가 여러 가지 진통을 겪으면서 파행으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노회의 여러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총회로부터 중징계를 받았고, 또 노회를 분립하라는 행정지시도 함께 받았습니다. 함께 노회를 할 수 없을 만큼 서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분들이 있다고 총회에서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총회의 지시에 따라 지난 3월 27일 오클랜드 공항근처 호텔에서 정기노회를 갖고, 새로운 임원진을 구성한 가운데 노회 분립을 가결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분립을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논의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노회가 분립될 경우 우리 교회가 어느 노회에 소속하게 될지는 노회분립에 대한 방안이 어느 정도 가시화 된 후에 당회에서 논의하게 될 것이고, 필요할 경우 임시 공동의회를 소집하여 성도님 여러분들의 의견을 반영하게 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일이 진행될 때에는 물리적인 충돌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종종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참석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것은 제가 총회와 노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는 처사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하여 참석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조금 늦게 노회장소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 교회 두 장로님들도 노회원이신데 두 분 다 직장일로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참 감사하게도 눈살을 찌푸리는 물리적인 충돌은 전혀 없이 비교적 조용하고 원만하게 노회가 진행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갈등의 상황으로 치달아 오게 된 것에 대해서는 아쉬운 마음이 적지 않지만, 그래도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가지 않는 성숙함을 보여주신 우리 노회의 선배 목사님들과 장로님들께 감사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기관은 “가정”과 “교회” 둘입니다. 두 기관 다 사랑이 표지가 되어야 하고, 쉼과 안식이 있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말 아이러니칼하게도 가정과 교회만큼 많은 갈등과 분열, 그리고 그에 따른 긴장과 스트레스가 있는 기관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실망하고 분개합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그 가운데 중요한 하나가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생각입니다. 둘 다 옳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화분을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이 마주보고 앉아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같은 화분을 두고 그림을 그렸지만 서로 다른 그림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앉은 위치에 따라 보는 시각에 따라 서로 다른 진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한쪽이 옳고 한쪽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둘 다 옳을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상대방이 본 것을 먼저 긍정해 줄 수 있는 마음의 쿠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여유를 가지고 상대의 입장을 진심으로 공감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결코 내 것을 포기해야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서로가 자기 자신의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먼저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해 주면, 제3의 옳고 좋은 길을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사이도, 부모님과 자녀 사이도, 목자님과 목장 식구 사이도, 목사님과 장로님 사이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모든 관계에서 적용됩니다. 지난 27일의 노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노회분립을 먼저 결정할 것인가? 회의를 진행할 새임원진을 먼저 구성할 것인가? 이것 한 가지를 결정하는 데만 두 시간이나 걸렸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은 들어주지 않고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를 반복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