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토요일이 저의 결혼 22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결혼식 당일 교회 마당의 하얀 목련이 활짝 피어있던 모습과 저희 부부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주시던 목사님의 모습, 혼인서약을 하던 순간, 축가 연주를 들으면서 감격과 감사의 눈물이 흘렀던 일... 많은 것들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나지만, 그 때 선포된 설교의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네요.^^ 그러니까 설교는 가능하면 짧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새 2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결혼한 첫 해를 제외하고는 결혼기념일을 제대로 챙겨본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회사 다닐 때는 직장일로, 그리고 목회를 하면서는 교회의 사역이 언제나 우선이 되어서 잊어버리고 그냥 지나가거나, 며칠 지나서 챙기기가 일수였습니다.
결혼기념일에 바라는 아내의 소망은 소박한 편입니다. 마음이 담긴 편지 한 통 혹은 가까운 산에 가서 한 두 시간 하이킹을 함께 하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작고 소박한 기대로 제대로 채워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그래도 지금까지 함께 잘 살아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교차합니다.
저희 부부는 사이가 좋은 편이지만 요즈음은 더 좋아진 것 같습니다. 희민이까지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둘이 남게 되었지만, 이어서 저의 사촌동생이 몇 달 지내다 가고 민애가 한 학기를 집에서 보냈고 또 처제의 딸이 한동안 함께 있었기 때문에 이제야 비로소 단 둘이 지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치 신혼으로 되돌아간 느낌입니다. 그런데 아내와 대화를 나누면서 생각해 보니 사실 우리는 신혼을 제대로 누려보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신혼을 살아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결혼과 더불어 그야말로 친정을 떠나서 시집살이를 시작했습니다. 홀시어머니와 시동생과 함께한 시집생활이 결코 평탄하지 않았고, 그런 신혼이 알콩달콩 재미있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2년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희생과 수고 때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더 감사한 마음이 생깁니다.
금년에는 결혼기념일을 잊어버리지 않고, 지난 금요일 저녁에 아내와 둘이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특별한 느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식사를 나눌 시간을 낼 수 있는 여유로움이 감사하고 좋았습니다. 그래서 목자님 목녀님들께 감사하고, 시온영락 성도님 여러분들께 감사하고, 이광민 장로님, 이기준 목사님 내외, 엄해용 목사님 내외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시온영락에 부임한 후로 3년의 세월은 좀 바쁘긴 했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긴장도 있었습니다. 한꺼번에 다섯 혹은 여섯 그룹의 성경공부를 계속해서 인도해 왔고, 처음에는 우리 자녀들을 돌보아줄 사역자가 없는 기간도 있어 금요일 모임은 저희 집에서 가지며 제가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변화들을 시도했고, 그것을 지속시키기 위한 보이지 않는 긴장과 노력들도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의 크고 작은 일들은 장로님들과 목자님 목녀님들께서 알아서 살펴주고 계시고, 자녀교육과 관련된 일체의 일은 제가 거의 신경 쓰지 않아도 되도록 이기준 목사님 내외께서 챙겨주시고, 그리고 엄해용 목사님까지 부임하셔서 설교를 제외한 예배 전반을 챙겨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년 상반기에는 성경공부도 두 클래스만 진행하고 있어 오랜만에 정말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선물이라 생각하며, 시온영락 삶공부 2013년 가을학기가 시작할 때까지는 좀 여유롭게 지내려고 합니다. 당분간 제가 조금 빈둥거리는 것처럼 보여도 이해해 주시기 바라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허락하신 담임목사의 사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준비의 기간이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