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선수가 야수들의 실책으로 인해서 다 이긴 게임에서 패전투수가 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 때 기자가 인터뷰를 하면서 실책한 선수가 원망스럽지 않느냐고 질문 했는데, 박찬호 선수는 조금도 원망스럽지 않다고 대답하면서 에이스는 어떤 경우에도 다른 사람 탓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인터뷰에 감명 받아서 목회자는 그 교회의 하나님의 에이스가 되어야 한다고 늘 강조하며 설교하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저도 그 설교가 참 은혜가 되어서 나도 우리 교회의 에이스다운 목사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노회 때 그 교회의 한 장로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장로님들은 목사님께 선수하지 마시고 감독이 되어 주십사 그렇게 부탁을 하는데도 뛰어난 선수(에이스) 역할을 하시느라 너무 바쁘시다’고 말씀 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우리 교회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 저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건강한 교회의 모습은 목자님 목녀님들이 에이스 역할을 해주고, 담임목사는 감독 역할을 하는 교회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것은 담임목사가 교회에 꼭 필요한 사역들을 적절하고 지혜롭게 “위임”함으로써 세부적인 일에 매달리기 보다는 전체적인 시야를 가지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리더가 너무 바쁘다는 것은 위임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저 역시 “위임”을 제대로 해 보고 싶은 마음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누구에게 무엇을 “위임”할 것인가의 질문이 따라 다닙니다. 저는 과거에 “집사”로 교회를 섬기면서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즐겁게 사역을 했는데,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이 맡겨져서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에도 지장이 생기고 교회 일에 지쳐서 신앙생활의 즐거움마저 빼앗긴 적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사람 돌보고 말씀 나누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 되고 힘이 나는데,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많은 허드렛일을 하느라 정작 기쁨이 되는 사역은 해보지도 못하고 지치기만 한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소중한 존재라기보다는 이용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저 자신의 경험 때문에 저는 언제나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가 교회를 위해서(더 근본적으로는 저의 성공과 성취를 위한 것이겠지요) 교인을 이용하려는 것은 아닌가 점검합니다. 일을 멋지게 잘 해내기보다는 일을 통해서 성도님들이 행복하게 되기를 소망하며 노력합니다.
그래서 본인이 즐겁게 할 마음이 없으면 일을 맡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지치고 힘들 때는 편안한 마음으로 쉴 수 있도록 배려하고자 노력합니다. 또한 어떤 분이 자기 자신의 신앙적 역량이나 처해 있는 환경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고 느껴지면 본인이 하고 싶어 해도 더 맡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가능하면 허드렛일처럼 보이는 사역보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일을 성도님들께 맡기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목자․목녀로서 예수님의 양을 먹이고 치는 사역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허드렛일을 맡아 주어야 교회 공동체가 건강하게 영혼을 구원하고 예수님의 제자를 세우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고 사소한 일에서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신앙과 인격의 성숙이 있어야 그런 일도 신실하게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들은 다른 사람에게 떠맡기기 보다는 제가 하려고 노력해 왔고, 그런 일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위임할 수 있을만한 성숙한 성도님들을 기다려왔습니다. 우리 시온영락 가족이 바로 그런 신자로 자라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우리교회는 이와 같은 전통이 세워지기를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고 누구나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은 신앙이 어린 분들에게 양보하고, 신앙이 자라갈 수록 아무도 보지 않고 알아주지 않고 재미없어 보이고 작고 사소해 보이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그런 일들을 찾아갈 줄 아는 그런 전통입니다. 제가 너무 어려운 것을 기대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