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일 설교 후에 “내가 천사의 말을 한다 해도” 찬송을 함께 부르면서 한편으로 성도님 여러분들께 미안하기도 하고, 또 민망하기도 해서 고개를 들기가 쑥스러웠습니다.
제가 주일 예배 설교 후 찬송으로 이 곡을 선택하였을 때, 이영미 집사님과 엄해용 목사님 두 분 다 우리가 함께 부르기에는 큰 도전이 되겠다고 우려를 표했는데도 그래도 꼭 해야겠다고 고집을 부려놓고, 저는 그런 어려운 곡을 미리 연습도 하지 않고 예배에 임했기 때문입니다.
목사로서 저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가 되는 일 가운데 하나가 예배 사회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마이크 앞에서 노래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곡을 정할 수 있을 때는 4분의 4박자에 군가 스타일로 부르기 쉬운 곡을 선택해서 하면 되었지만, 때때로 정말로 난감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마이크를 몰래 끄고 찬송을 부르거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입술만 움직이거나, 강대상에서 뒤로 물러서서 찬송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어느 날 ‘내가 평생 목사로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언제까지나 피해갈 수만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8회에 걸쳐서 개인지도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 때 그 분께서 가르쳐 주신 것은 딱 한 가지, 잘하든 못하든 자신 있게 소리를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하려고 나름 노력을 다해왔습니다.
그래도 많은 성도님들이 함께 예배드릴 때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때로 정말로 당황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새벽 예배 때는 반주도 없이 저의 선창으로 찬송을 시작하게 되는데, 저도 잘 모르고 성도님들도 잘 몰라서 서로 민망하게 될 때가 가끔 생깁니다. 부르기 시작한 곡을 중간에 포기하고, 쉬운 다른 곡으로 다시 찬송을 정해서 부르고 싶은 마음이 밀려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중간에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잘 부를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부르거나 정 안되면 가사라도 함께 읽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하는 데는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제가 잘 못한다고 쉽게 포기하고 물러서 버리면, 우리 시온영락 성도님들이 저로부터 똑 같은 나약한 신앙의 태도를 배우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는 잘 못하는 일이라도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첫발을 내디디고, 도전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전진하는 야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장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잘 못하는 일에 뛰어 들었다가 우스운 사람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뻔히 우스운 사람이 되어버릴 것이 틀림없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라면 뛰어들어 결코 포기하지 않고 전진할 줄 아는 것이 기적을 경험하는 순종입니다. 우리 교회는 능력과 실력이 안 되는 데도 순종해서 도전하는 분들을 뒷담화 하는 대신 귀하게 여기고 격려하는 그래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그런 신앙의 문화를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둘째는, 아무리 잘 안되는 것처럼 보여도 포기하지 않고 반복 노력하면 반드시 잘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서로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1절을 부를 때 엉망으로 불렀다 하더라도, 2절을 부를 때 더 나아지고, 그리고 3절을 부를 때 더 나아지는 것을 늘 경험합니다.
찬송도 마찬가지고, 암송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삶의 대부분의 영역이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잘 못한다고 혹은 해 본적이 없다고 뒤로 물러서서 쉽게 포기해 버리고 만다면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빼앗기게 될 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소중한 자녀들도 바로 그런 소극적인 태도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듣고 배우지 않고 보고 배웁니다. “내가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어려운 찬송이지만 도전합시다. 확신의 삶 암송성구, 물론 암송이 쉽지 않지만 도전합시다. 이왕에 하는 것 영어까지 외워버립시다. 우리 자신의 성장과 우리의 자녀들을 앞날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