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자기 목장만 챙기는 것 같아서 좀 그래요.” “목장 식구 외에는 모두 낮선 사람처럼 느껴져요.” 이런 이야기들은 가정교회로 자리 잡아 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듣게 되는 하소연인데, 어떤 교회는 이런 소리들이 커져서 가정교회를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하게 가정교회가 세워지면 이런 이야기들은 다 사라지게 됩니다.
저는 목장 중심으로 교회를 세워가기 시작할 때부터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한 달에 한 번씩은 두목장이 함께 모이는 연합목장을 갖도록 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들 보다는 조금 더 늦게 그리고 더 작게 이런 하소연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잃은 영혼을 구원하고 예수님의 제자를 세우는 가정교회가 건강하게 자리 잡아 가는 과정에서 각 목장마다 VIP가 생기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목장 중심의 주일친교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를 오래 출석한 저와 여러분들도 주일친교 시간에 함께 식사하며 대화할 사람이 없으면 이토록 소외감을 느끼는데, 신앙생활 처음 시작하는데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목장 식구 외에 아무도 없는 VIP님들께는 교회가 얼마나 낯설고 힘이 들까요?
목장에 VIP님들이 있으면 있을수록 그 목장 식구들은 주일 다른 분들께 신경을 쓰고 인사할 겨를이 없어집니다. VIP님들은 소외감을 느끼면 다음 주일은 교회에 안나올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일 자기 목장 식구 외에 다른 분들과 교제하기가 힘든 것은 목장 중심의 가정교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교회에 VIP님들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시온영락가족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만약 주일친교 시간에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아 우리 목장이 오랫동안 VIP는 없이 우리끼리만 모여왔구나’ 하고 생각하시면 거의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목장에 항상 VIP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여러 가지 환경과 여건 때문에 VIP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요? 제가 이 문제로 고심하며 기도하는 중에 한국의 한 교회 생각이 났습니다. 한국 인천에 가면 한 지붕 두 교회 소망교회와 작은 교회가 있습니다. 소망교회(이정필 목사)도 상가 건물에 세 들어 사는 작은 교회인데, 예배드릴 곳이 없어 힘들어하는 작은교회(박태진 목사)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하고 주일 오후 예배당을 사용하시도록 먼저 제안을 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상가 건물에서 오전에는 소망교회, 오후에는 작은교회가 예배를 드리고, 주일학교 프로그램은 같이 운영한지 3년이 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두 교회가 같은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주님의 소원. 소망교회는 작은교회를 돕는 다는 생각으로 예배당을 사용하게 해드렸는데, 알고보니 작은교회는 소망교회를 성공시켜 주려는 마음으로 입주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망교회가 든든히 세워지면 또 다른 교회를 성공시켜 주기 위해서 기꺼이 다른 곳으로 떠나기로 담임목사님과 성도님들이 함께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형식은 세 들어 사는 교회에 얹혀서 사는 교회이지만, 조금도 위축됨 없이 주인 교회보다 당당하게 예배당을 사용하고, 교회 간판도 달지 않고, 소망교회가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을 때는 두 손 두 팔 다 걷고 자기 교회보다 더 열심히 섬겨 준다고 합니다. 소망교회가 밀린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것을 우연히 알고는 특별헌금을 해서 전체를 갚아주기까지 해서 감동을 시켰다고 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교회간의 코이노니아로 소망교회는 현저한 성장을 이루고 있고, 이 과정에서 작은교회 또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지금도 진행 중인 실화입니다. 저는 박태진 목사님과 작은교회의 그 아름다운 섬김이 너무나 놀랍고 존경스럽습니다. 천국에 가면 누구의 상이 더 클까요? 저는 우리 주님께서도 작은교회를 더 자랑스러워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꼭 우리 목장에서 VIP님들이 정착하고 예수님 만나야 하는 것 아닙니다. 우리 목장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형제 목장이 VIP님들을 더 잘 섬길 수 있도록 우리 목장이 한 팀이 되어 형제 목장을 섬겨 준다면 그 보다 더 아름다운 섬김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