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우리 지역의 목사님 혹은 교회 연합 모임에 할 수 있는 한 참석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저는 지역의 연합 모임이나 노회, 총회와 같은 모임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저 자기 목회 열심히 하지 않는 시간 많으신 분들이 이런 저런 감투를 나눠 쓰고 폼 잡는 통로 정도로 생각 했습니다.
저의 이런 생각이 바뀌게 된 데는 손원배 목사님의 영향이 큽니다. 가까이에서 지켜 본 바로, 손원배 목사님은 감투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는 분이십니다. 제가 존경하는 손 목사님께서 겸손하고 성실하게 지역의 연합 모임과 노회에 참석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필요성과 중요성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연합 모임을 섬긴다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리를 존경스럽고 건강한 목사님들이 지켜주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점점 더 깊이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교회 사역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난 3년간 산호세 지역교회협의회 서기로 심부름을 하였고, 금년부터는 총무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간에는 한국 컴패션의 북한사역을 소개하는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교회협의회의 총무가 아니었다면 거의 참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교회협의회 총무로서 북한 사역을 위한 모임에 목사님들의 참석을 독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거기다 다른 분들의 참석을 독려한 책임감 때문에 부득불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하게 된 그것이 큰 축복이 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컴패션은 규모가 상당히 큰 국제적인 구호 기관인데, 이 컴패션이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섬기기 위해서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이 저에게는 상당한 충격이 되었습니다.
1952년 겨울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때, 미군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한국을 방문 중이었던 에버렛 스완슨 목사는 한국의 새벽 거리를 걷게 되었습니다. 그날 우연히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길에서 웅크린 채 얼어 죽은 어린아이들의 수많은 시신을 쓰레기 더미와 함께 버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 충격 속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컴패션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컴패션은 1993년까지 41년 동안 10만명 이상의 한국 어린이들을 양육할 수 있었고, 그 어린이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그 분들 가운데 150여명의 목사님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2003년 컴패션 코리아가 창설 되었고, 지금은 14 나라의 컴패션 가운데 미국 다음으로 크고 왕성하게 26개국의 어린이들을 복음과 사랑으로 섬기는 기관이 되었습니다. 수혜국에서 후원국이 된 나라는 컴패션 안에서 한국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현재 북한 고아들의 처지는 한국전쟁 때 길에서 얼어 죽어 쓰레기 더미에 버려졌던 수많은 어린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국 컴패션은 북한 어린이들의 현실을 보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있습니다. 교회가 유일한 희망인데 한국 교회는 북한을 섬기기에 너무나 준비되지 못한 상황이어서,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한국교회를 준비시키는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한국 컴패션 대표 서정인 목사님의 도전을 들으면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체 유료 광고를 하지 않고 있고, 또 행정과 재정투명도 1위를 지키고 있는 한국 컴패션에 신뢰가 갔습니다. 시온영락가족 여러분 가운데 북한을 섬기는 이 귀한 일에 함께 하기를 원하시는 분 계십니까? 기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알지 못하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