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에 저는 이 목회편지를 통해서 세 축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설명해 드렸습니다. 위에 있는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대략 감이 오시나요? 삶공부를 통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바로 알고 또 살아보고, 목장을 통해서는 감사와 기도의 나눔과 그 기도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통해서 함께 가족이 되어가고, 예배에서는 한 주간 살아볼 말씀 하나 붙들고 나아가면 그 예배는 성공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한 주간 붙들고 살아가볼 말씀을 붙잡았다면, 그 말씀대로 살아가 보겠습니다 헌신석에서 헌신해 보시고, 저와 함께 기도로 한 주 살아가 보시면,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 후, 기도 전에 ‘내 모습 이대로’를 찬양합니다. 그 때부터 축도가 끝난 후까지 언제라도 헌신의 자리로 나오시면 됩니다. 그 자리에서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내 한 주간의 삶을 결단하고, 결단한 내용을 쓰고 기다리시면, 제가 축도 후에 기도해드리러 갑니다. 그리고는 저의 기도와 함께 한 주간 살아가 보는 거지요.
자, 세 축이 무엇인지는 알았는데, 그러면 네 기둥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세 축이 교회가 세워지는 구조물이라면 네 기둥은 그 구조물을 가득 채우는 정신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기둥’이라는 단어가 있어서 네 기둥이 또 하나의 구조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네 기둥은 세 축으로 움직이는 교회를 채우는 네 가지의 정신입니다. 오늘은 첫 기둥만 나누도록 하지요.
첫 기둥은 교회의 존재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입니다. 교회의 존재목적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많은 생각들을 하고 말합니다. 하지만 교회가 머리이신 예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는 몸이라고 한다면, 몸의 목적이 아니라 머리의 목적을 따라가야 하는 거겠지요. 그러면 예수님의 소원은 무엇인가요? 어떤 사람의 일생일대의 소원 하나를 말하라면 우리는 그 사람의 유언을 살펴보면 됩니다. 거짓을 말하거나 과장할 필요가 없는 인생에서 가장 정직한 순간에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유언이 있었을까요? 그 분의 유언과도 같은 말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28:19-20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이 유언과도 같은 말씀에서 예수님은 ‘가서’ ‘제자를 삼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평소에 쓰는 언어로 표현하면 ‘영혼구원 하여 제자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첫 번째의 기둥은 “교회의 존재목적은 영혼구원하여 제자삼는 데 있습니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