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와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고 자주 나누게 됩니다. 용서라는 것이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별히 나 자신에 대한 용서, 나와 가까운 사람에 대한 용서는 그렇지 않는 대상들에 비해 훨씬 어려운 것 같습니다. 내가 빚진 1만 달란트의 죄를 용서해주신 주님이 계시기에 1백 데나리온을 빚진 형제자매들을 용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야기도 머리에 머물러 있기는 쉬우나 삶으로 실천하기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최영기 목사님이 쓰신 목회칼럼을 읽게 되었고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기에 더욱 크고 넓게 전해지는 용서의 삶을 한 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용서를 가장 필요로 하는 대상이 가족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은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깊은 만치 상처도 쉽게 주고받습니다. 사실 많은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받은 마음 상처를 안고 삽니다. 그러나 부모들은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수가 많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의 용서를 구할 때에 상처가 치료됩니다. 그러나 용서를 구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부모의 권위가 강조되는 동양 가정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얘, 내가 잘못했다. 용서해다오.' 한마디만 해주면 한이 풀릴텐데 이것을 안 해 주어 일생동안 멍든 가슴을 안고 사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용서를 쉽게 구할 수가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고마움도 있고, 영적인 눈이 뜨여서 자신의 잘못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용서를 빌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보아서 진정으로 예수님을 영접했는지 안 했는지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
꽤 한참 되었습니다. 임종을 맞을 때에 내 마음에 이웃에 관한 찌꺼기가 없고 이웃의 마음에 나로 인한 찌꺼기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상처를 준 사건이 기억나는 즉시 편지를 쓰든지 전화를 해서 용서를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상하게도 용서를 빌고 난 후에 억울한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쇼를 한다고 비웃습니다. 어떤 사람은 용서할 것이 없다고 잡아뗍니다. 어떤 사람은 '네가 네 죄를 깨달았구나' 의기양양한 태도를 보입니다. 이러할 때 상대방이 내게 잘못한 것들이 새록새록 생각나면서 자신이 먼저 용서를 빌었다는 사실이 억울하게 느껴집니다.
용서를 빌어올 때에는 은혜롭게 받아 주어야 합니다. 아랫사람이 용서를 구해오면 그 용기를 칭찬해주고, 윗사람이 용서를 구해오면 그 겸손함에 감사를 표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용서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에 용서를 주는 사람이나 용서를 받는 사람이나 진정한 치유를 맛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