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약점보다 장점으로 죄를 지을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사단도 이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의 장점을 공략합니다. 사실 약점에서 죄를 지을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설령 죄를 지었더라도 약점에선 금세 표시가 나기에 회개로 이어지기도 쉽습니다. 그런데 정말 묘수는 나의 장점을 파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표시가 잘 안납니다. 그래서 회개의 레이더에 잘 걸리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장점이 강점이라서 그렇습니다. 내가 강하게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내 실력의 칼날이 파릇히 강하게 세워지고 이 분야에서는 내가 전문이라고 생각되는 주장이 강하게 일어나는 그래서 하나님 없이도 가능하겠다는 그 지점! 장점이 강점이기에 사단에게는 최고로 좋은 공격점입니다.
말 못하는 사람이 답답하기는 해도 말로 죄 지을 일은 적습니다. 말 실수를 했더라도 말주변이 없어서 그러려니하고 사과도 빨리 나옵니다. 대신 말 잘하는 사람은 말로 죄를 지을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말 실수를 했더라도 워낙 말을 잘하기에 감언이설로 넘겨버립니다. 분명히 사과해야 할 일인데 오히려 사과를 받아냅니다.
회개해야 할 일인데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장점이 진짜 문제입니다. 성경 잘 아는 사람이 성경으로, 공부 잘하는 사람이 공부로, 칼로 흥한자는 칼로 인하여, 돈 잘버는 사람은 돈으로, 권세가 있는 사람은 권세로, 자기의 장점에서 가장 큰 유혹과 타락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못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것에서 모르는 분야보다 잘 아는 분야에서 실수할 때보다 눈감고도 할수 있는 경지에서 모자란 때보다 넘치는 때에 초보인 때보다 프로가 된 때부터
을의 입장보다는 갑의 입장에서 진짜 상대하기 힘든 죄를 경험합니다.
사도 바울이 여기에 딱 들어맞는 경우입니다. 그의 장점은 율법이였고 학식이었습니다. 누구도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장점이었습니다.
바로 이 강점이 예수님을 핍박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 강점에서 바울의 자아는 예수님과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만난 후 고백합니다. 이전에 자기의 장점이었던 것이 이제는 배설물과 같아졌다고. 강점에 서있던 자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말입니다. 마침내 장점과 약점이 뒤바뀌는 역설을 말합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9)
이 말씀을 읽을 때 저는 이렇게 받았습니다. “주님, 저의 장점이 오히려 약점이로군요.”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장점이,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강점이 진짜 나의 약점임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거기서 주님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장점으로 죄짓지 않습니다. 그때에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장점을 약점으로 생각하면 좋습니다. 예수님께 약점을 잡혀야 좋습니다. 약점 잡혔으니 교만할 것 없어 좋습니다. 이제 훨씬 자유로워 졌습니다. 이제 진짜 강점이 되었습니다. 그 때에야 좀 뭐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