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 속에는 체면이나 남의 평가에 예민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명분적 사고"가 들어 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예수님의 마음이 공동체 가운데 느껴지느냐, 나의 예배를 받으신 하나님을 체험한데서 오는 담대함와 유연성을 사람 관계에서 즐기느냐 같은 것이기를 바랍니다. 비교의식에서 나오는 감정적인 흥분, 많은 사람들이 하면 자신도 따라야 할 것 같은 강박 같은 것이 아니라요. 한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목회 가운데는 "Yes는 Yes가 아니고 No도 No가 아니라"는 애매모호한 경우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거절해 놓고 좀 더 강하게 삼세번 부탁하지 않았다고 섭섭해 합니다. 식사하겠냐고 물었을 때 식사하자고 하면 될 것을, 안 먹겠다고 해 놓고 자기 빼 놓고 먹었다고 섭섭해 합니다. 이런 문화적 갈등이 교회 안에서 얼마나 많은 문제로 나타났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정직하게 말하는 연습을 무척 많이 했습니다. 서로 신뢰하고 격려하고 축복해서 그 사랑의 에너지로 세상에 복음를 전해야 할 교회 공동체가 애매모호한 태도와 명분만 내세우는 문화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서로 불신하는 관계를 "정상"인 것처럼 변질되어 거의 운명론에 빠지듯 "교회는 다 그런거야" 식으로 체념하는 말을 절대로 못하도록 자주 드러내고 고쳐나가는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물론 목사인 저도 인간인지라 말 실수도 많았고, 본의 아니게 오해도 샀지만, 우선 저부터 분명히 Yes는 Yes 하고 No는 No 하는 투명한 목회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누가 뭐래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면 했고, 누가 뭐래도 교회를 흔들려는 소문이나 공격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막아 왔습니다. 이를 통해 결국 자기 자존심 세우는 도구로 교회를 이용하려는 습관들은 사라지고, 정직한 영성이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왜 서로를 불신하는 영성이 교회에 존재하는가를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추상적이고 신학적인 답이라면 마귀의 시험과 유혹, 그리고 인간의 죄성 때문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중 언어로 말하면 교회생활에 대한 질못된 선입견 그림, 그리고 정직하게 그러나 따뜻하게 누리는 신앙생활의 연습이 뭔지 몰랐던 오류가 문제였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믿는 사람이기에 체면 문화 같은데 매여서 살아가지 마십시다. 내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못하게 될 것 같으면 정직하게 말하고 용납 받는 것을 즐깁시다. 내가 용납 받고 있기에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누군가가 함께하지 못할 때, 판단/비판의 목소리가 아니라 배려의 목소리를 연습해 보십시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라 언약을 맺는 사람들입니다. 못믿어서 글로 맺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말로 맺은 약속이요.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언약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해서 연약한 형제자매를 붙잡아 주고, 회복하는 섬김을 계속 연습해 보십시다. 잘 지내다가도 조금만 자기 맘에 안 맞으면 불신하고, 헤어지고, 원수 삼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말고 영혼을 섬기기 위해서 한 마음으로 서로 용납하며 살아가 보십시다. 우리의 관계가 계약이 아니라 언약이라서 참 좋습니다. 저를 잘 봐주십시오, 여러분! 저도 여러분을 잘 봐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