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여러분은 시온영락교회가 예수님을 믿지 않으시는 분들에게 열려있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가장 열려있는 곳이 예배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유치원 때부터 교회 안에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교회의 문화에 익숙합니다. 아무리 성경의 번역이 어렵다고들 해도 저는 마치 조선시대의 언어와 같은 개역한글 성경번역이 익숙합니다. 오히려 그 번역 속에서 왠지 모를 위엄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교회의 예배 속에서 “새번역” 성경을 사용하려고 노력합니다. 제게는 익숙할지 모르는 그 어려운 번역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시거나 예수님을 처음 믿으시는 분들께는 하나님께 다가오는 장벽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글을 읽었는데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이겠습니까?
주기도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무엇인가를 외는데 익숙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할 때도 암기과목이 이해하는 것보다 더 쉬웠습니다. 제가 신학교 때 서울에 있는 한 큰 교회 목사님의 아들에게 수학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당시 서울고등학교에서 학년 전체에서 1,2등을 다투고 있던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별로 과외를 받아야 할 필요가 없었지요. 그래서 그랬는지 부모님이신 목사님과 사모님도 첫 시간을 해보고 계속할지 안할지 결정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첫 날 과외를 갔을 때, 공부하기 전에 기도하고 시작했고 공부가 끝난 후 함께 주기도문을 하고 공부를 끝냈습니다. 그 때 그 아이가 제게 했던 말이 이겁니다. “주기도문을 토씨 하나까지 틀리지 않고 외는 사람을 지금껏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전도사님 (그 때 저는 이렇게 불리고 있었습니다)은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으시네요.” 그 사건이 그 아이의 마음에 크게 자리 잡은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 아이가 수능시험을 칠 때까지 거의 2년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그 중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주기도문 때문이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는 수요예배와 토요 새벽예배 때에 새번역 주기도문을 사용합니다. 제게는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잘 외어지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새번역 주기도문을 사용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평일의 새벽예배와는 달리 수요예배와 토요 새벽예배에는 예수님을 모르시는 분들과 교회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분들이 최대한 덜 불편하시도록 배려하는 것이 시온영락교회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예배 때 하는 신앙고백도 우리의 이러한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신앙고백을 질문과 대답의 형식으로 하는 것은 구약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신앙고백의 형식을 붙잡은 것입니다. 예배 때에 제사장과 백성들이 매기고 받던 찬양과 신앙고백은 시편의 시대부터 시작된 예배의 형식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배는 이 형식을 붙잡고 그 내용을 새번역 사도신경으로 채웠습니다. 단어와 문장의 순서에 있어서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방식과 훨씬 가깝기 때문입니다.
시온영락교회의 예배는 이처럼 예수님을 믿지 않으시는 분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도록 노력하는 일을 쉬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 안에도 교회생활을 하신지 오래되어서 예전이 편하신 분들이 있을겁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생각과 태도를 주님의 소원에 맞추어 가십시다. 우리 교회의 예배가 늘 주님을 알지 못하시는 분도 편안하게 참석해서 주님 안으로 들어와 생명이 살아나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