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가 빠르다”라는 말은 많은 경우에 부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처세술이 훌륭하다, 다른 사람에게 아부를 잘한다와 같은 의미를 그 안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특별히 우리가 살아왔던 대한민국의 유교문화는 눈치와 체면의 문화였습니다.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서 식탁을 준비하고는 “차린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든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하는 과정에서도 그냥 있는 그대로 마음을 표현해도 되는 상황이지만, 체면 때문에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고 “오다 주웠다” 같은 식의 표현을 합니다. 식사 하겠냐고 물어보면 배가 고프면서도 사양하고는 뒤로 돌아서서 세 번 물어보지 않았다고 기분 나빠합니다. 이런 눈치의 문화와 체면의 문화가 우리 안에 있는 소통을 막을 때가 많습니다. 필요 없는 감정의 소모나 상처와 갈등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눈치가 너무 없기에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별히 말을 할 때, 상황에 맞지 않고 선을 넘는 이야기를 함으로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일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삶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감각이 필요합니다.
VIP들이 목장에 참석하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고, 이 분들이 기쁨으로 목자목녀가 되어 제자가 되는 교회! 이렇게 하면 망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성장하는 교회! 이런 교회를 만들어가는 우리는 우리 삶의 관계와 소통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먼저 눈치를 잘 살펴야 할 곳이 있습니다. 거기는 VIP를 섬기는 영혼구원의 목표를 위할 때입니다. VIP의 필요가 무엇인지, 원망이나 쓴뿌리를 표현할 때, 어떤 치유와 위로가 필요한지, 현실적인 삶의 곤고함과 자라면서 경험된 아픈 과거가 오늘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지, 이런 상황과 마음의 형편을 살피는 눈치는 깊을수록 좋습니다. 반면에 시간이 흐르면 그냥 지나가고 없어지고 말 사람들의 말이나, 거짓된 체면으로 만들어진 부정적인 평가, 혹은 일반 교회에서 가장 무서워하고 신앙의 근본까지 흔드는 부정적인 소문, 혹은 사람들의 집단적인 원망의 영성에 대해서는 눈치볼 필요가 없습니다. 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려고 섬기는 그 섬김에는 성령님이 동행하십니다. 하지만 허무한 체면이나 비겁한 열등의식이나 비교의식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소문이나 원망들은 결국 성령님이 빛 가운데로 드러내시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말 감사한 것은 우리는 진정 눈치를 보아야 할 말, 사람, 상황에 대해 성령님이 주시는 분별력을 매주 연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동시에 목장이라는 공동체가 있어서 같이 기도해주고, 분별해주고, 격려해주고, 기도해줄 수 있습니다. 이는 세상이 알 수 없는 엄청난 복을 누리는 현장입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감각을 갖추어 가십시다. 세상의 가치관, 사람의 말, 열등감에서 나오는 비교의식에서는 자유로워 지십시다. 이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담대함, 겸손함, 유연성으로 영혼을 섬기는데 필요한 눈치를 더 깊이 만들어 가십시다. 세상의 부정적인 말, 원망과 비교에 대한 눈치는 버리며, 예수님이 주신 자유함을 좀 만끽하며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